제주도 3기 4기 전우회 사무실을 나와서 제주 북초등학교로 향했다.
사실 전우회에 들른 이유도 이 사진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여쭈어보기 위해서였다.
사진 속에는 3기, 4기 선임들로 보이는 분들이 연병장에서 사열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이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전우회의 선배님들께서는 이 사진을 보시더니,
'어, 이거 우리네.'
하시면서 정확한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셨다.

사진 속의 이 장소는 제주 북초등학교이다.
나는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북초등학교를 입력했는데,
장소에 다 와 갈수록 왜 이곳에서 입도식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곳은 바로 구시가지에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60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 시가지가 맞겠지만,
특히 이곳은 예전 항구였던 산지부두와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려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북초등학교는 원래 작은건지, 아니면 주변이 개발되면서 운동장이 좁아진 건지는 몰라도
꽤 운동장 크기가 작아보였다.

공을 차며 놀고 있던 북초등학교 꼬마들.

사진 속 선배님들께서 사열하시던 장소.

학교 건물과 교단의 위치는 아마 그대로였을 거라고 짐작하고,
사열하는 모습을 촬영한 그 장소에서 사진을 한 번 찍어보았다.
지금은 학교 주변에 아파트도 많이 생기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평화로운 장소이지만,
60년 전에는 전쟁터로 향하는 젊은이들의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을 것이다.
문득 전우회 사무실에서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기들의 명단을
하나하나 정리하시던 선배님들이 생각났다.

학교를 나와 선배님들께서 출항식을 가졌을 산지부두에 가 보았다.
사실 산지부두는 옛날 이름이라, 길을 물어볼 때 모르는 분도 더러 계셨다.
그래서 항구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등대에 올라갔다.

항구 풍경도 북초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등대와 항구. 저 멀리 한반도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ㅎ

제주항의 전경, 이 어딘가가 예전에는 산지부두였다고 한다.

4기 선배님 말씀으로는 언제 전투에 바로 투입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군함 갑판 위에서도 훈련을 받으셨다고 한다.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첫 임무로 인천상륙작전을 펼치신 선배님들이 부러워졌다.
대대급 IBS 훈련도 대단한데,
미 해병대와 함께 인천에 상륙하는 작전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늘 함께 돌아오지 못한 동기가 생각난다는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내 생각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다.
그래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에 대해 잘 모른다.
나 역시 다른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전역하기 전에 훈련받았던 사진들을 자랑스럽게 앨범에 담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야전의 군인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난다.
내가 수행한 2년간의 복무가 얼마나 숭고하고 엄숙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전역할 때까지도 모르다가,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선배님들의 참전수기를 읽어보고 더 고개가 숙여졌다.
어머니를 두고 떠나야 하는 아들의 슬픔,
출항하는 군함 안에서 느꼈던 한 인간으로서의 두려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수많은 전투를 거치면서 점점 악독해짐을 느꼈던 이야기,
원산항에서 퇴각작전을 펼칠 때, 제발 데려가 달라던 한 중년 여성의 울부짖음이
아직까지도 잠자리에서 가끔 들린다는 수기들을 읽고나니,
항상 신화와 같던 선배님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그런 선배님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지금의 풍요로운 혜택을 누리고 있다.
북초등학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이 평화로운 제주항도,
또 그곳을 찾아 여행하는 나도
모두 선배님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제주시 동문로터리에는 그런 선배님들의 업적을 기려 1960년 4월 15일, 해병혼 탑을 세워졌다.





다음은 탑의 우측면에 있는 취지문.. 

- 취 지 -

단군의 역대를 두고 유례없는 백의민족의 수난 6.25 동란을 상기한다.
국운명멸의 기로에 선 민족의 살상은 금수강산을 혈루로 물들였고 육골은 산야에 허덕일 때,
좌시보다 죽음으로 구국의 대도를 자향하여 민족의 지침이 되겠다고
십대의 젊은 이 고장 학도들이 바로 충무공의 넋을 이은 대한해병 이었다.

세기의 전사에 찬란한 인천상륙작전은 세인공지의 사실이며,
대한민국의 운명을 반석위에 안치케 하였다.
생존한 우리 해병제대장병은
이고장 건아 앞에 호국정신의 계승의 표식을 계시하는 뜻과
대한의 영구한 번영을 기하는 붕지에서,
여기서 지난날의 전력을 더듬으며 그 역력한 전공을 추념하고
영구불멸의 상징의 탑을 이 고장 한라록에 세우노라.

탑 건립에 제하여 해병대령 이서근, 예비역 고철수, 문상률, 김형근 동지들의
희생적 노고에 감사를 표하면서

단기 4293년 4월 (서기 1960.4)
건립대표 장시영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 여행을 돌이켜보니,
조금 엄숙하긴 했지만, 제주도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어 뿌듯했다.
수학여행으로 왔을 때엔 마냥 즐거운 휴양의 섬인 줄로만 알았는데,
해병이 되어 다시 오니, 제주도가 관광명소가 아니라
나라가 위태로웠던 1950년, 구국의 보루였던
호국도(護國島)로 느껴지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제주도의 또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는 해병이라는 사실이
이날따라 더욱 자랑스러웠다.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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