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승! 兵1037期 윤동빈입니다!

저는 백령도 6여단에서 81mm박격포병으로 근무하였고 2009년 12월에 전역하였습니다.

해병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2007년 1월 입대했는데,

전역한 후에도 해병대를 알리는 여행기를 쓰게 되어 무한한 영광을 느낍니다.

저의 여행기는 1945년 4월 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해병대 창설 첫 발을 내딪은 뒤,

이후 수많은 신화를 남겼던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따라 주요 전사적지를 둘러볼 것입니다.

진해, 진주, 창원, 통영부터 38선 근처의 도솔산까지,

우리나라의 해병대와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재미있는 여행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함께 둘러본 지역 부근의 명소, 볼거리, 토속음식들도 소개할 것입니다.

해병을 테마로 여행하실 선후배님들의 가이드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윤해병의 해병대 여행을 출발하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다.

백령도 6여단에서 근무할 때 동갑내기여서 더 친했던 오세진 해병과

포항 1사단으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는 내내 오해병에게 우리의 행운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댔다.

해병대를 테마로 한 여행.

이건 정말 행운이다.

해병대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모든 해병가족이 똑같겠지만,

그 사랑을 계속 실천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나와 오해병처럼 취업준비가 한창인 대학교 4학년때에는 더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병대 여행기를 쓰게 되면 항상 해병대를 생각할 수 있고,

무엇보다 즐거운 건 바로 여행.ㅎㅎ

일상에 찌들고 답답한 서울을 벗어나 국토를 여행할 수 있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활력소다.

 

"오해병, 우리 여행하면서 기운 충전한 덕분에 올해 취직 대박나는거 아냐?!?ㅎㅎ"



시원하게 뻗은 중앙 고속도로.



내가 첫 여행지로 정한 곳은 바로 포항 교육훈련단이다.

옛날 선배님들께서는 진해에서 해병이 되셨지만,

1977년 포항으로 훈단이 이사하고나서부터 포항은 해병양성의 새 요람이 되었다.

나 역시 2007년 1월 8일 포항 서문을 통과하고 해병이 되었다.

신화와 같은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에 앞서,

다시 한번 해병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교육훈련단에 제일 먼저 가보기로 결심했다.

1사단 서문.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며 들어갔던 이 곳에 다시는 올 것 같지 않았지만,

예상치도 못했던 3년 뒤에 이렇게 가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또 이 날은 오해병의 입대 3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3년만에 포항 서문으로 다시 가본다는 생각에 오해병도 굉장히 설레였고,

가는 길부터 다 기록해 두어야 한다며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었다.



중앙고속도로의 터널.



2006년에 이르러 모든 구간이 완공된 중앙고속도로는 정말 편리했다.

우리집 제천에서 포항까지 불과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 이 날은 금요일이라 그런지 도로에 차량도 그리 많이 않아서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쭉 뻗은 고속도로처럼 하늘도 구름 한 점 없이 탁 트여 있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아무튼 이래저래 됴쿠나~ㅎㅎ

 

포항에 도착해서 우리를 인솔해 주실 담당관님께 전화를 드렸다.

사실 담당관님 귀찮게 해드리지 않고 바로 찾아가고 싶었는데,

네비게이션에 1사단은 군사시설이라 나오지 않아서 우리는 한참 헤메일 수밖에 없었다.

더 가면 왠지 도구해안이 나올 거 같은 기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담당관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네비게이션에 '해병교'를 입력하면 된다고 하셨다.

역시...

모르면 물어보라던 선임의 말씀은 진리이다.;;ㅎ

괜히 멋대로 해서 약속시간에 늦게 생겼다..

 

친절한 네비게이션 성우의 지시를 따르다보니, 사격장 갈 때 자주 다니던 익숙한 길이 나왔다.

 

나 - "오~ 이 길!! 우리 사격장 갈 때랑 천자봉 갈 때 나오던 곳이잖아!ㅎㅎ"

오해병 - "맞네~~ 무장메고 나오던 거 생각난다.ㅎ"

 

그렇게 익숙한 길에 반가워하며 조금 더 달리자,

보는 이를 압도할만한 붉은색 간판이 나타났다.

그곳이 바로 얼마전에 완공된 해병 교육훈련단 정문이었다.



가슴벅차는 교육훈련단 정문의 문구.




훈련병 시절, 한창 공사중이던 이 곳이 교육훈련단 정문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그 커다랗고 붉은 현판을 한참동안 서서 바라보았다.

 

'이제 신병들이 이곳으로 들어오는건가..?' 

 

특히 '해병대 미래는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문구..

나는 이 문구를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통과했던 포항 서문에도 많은 문구가 있었다.

'인간개조의 용광로', '최고의 군인 최고의 민주시민이 된다.'

훈병이 보면 두려움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문구들이었다.

하지만 이 교육훈련단 새 정문의 간판을 보니,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참 잘 지은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 문구.

자신이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해병대의 미래라는 생각을 할 때,

훈련병은 자부심은 물론 해병대의 미래가 어깨에 달려 있다는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잠시 기다리자 담당관님이 나오셨고, 함께 교육훈련단 안으로 들어갔다.

담당관님의 차를 타고 교육훈련단 본부를 지나서 쭉 달리자,

내가 있었던 제3신병교육대대가 나타났다.



제 3 신병교육대의 전경.



무적3대대.ㅎㅎ

실무에 가면 서로 자신이 교육받았던 대대가 무적대대라고들 한다.ㅎ

예를 들어 오해병이 제1신병교육대대 출신이라면,

실무에서 1대대를 나온 선후임들끼리

'1대대가 무적대대지~~!! 당나라 2대대, 해병캠프 3대대 못 들어봤어?!?' 라고 떠벌린다.

그러면 3대대를 나온 선후임들끼리는 다시 3대대가 무적대대라며,

서로 농담을 하곤 한다.ㅎ

 

아무튼 내게 무적의 대대였고, 무적해병의 정신을 배웠던 제3신병교육대대.

그곳에 오자, 무적해병 상승해병 최강해병의 정신을 함께 배우던 동기들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저 연병장에서 동기들과 전투복을 처음으로 지급받던 일,

한밤중에 전투복도 제대로 못 챙겨 입고 나와 다같이 목봉을 들던 추억,

해병대의 단결력은 모두 이 신병교육대대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우리는 하나이다. 내가 팔에 힘을 빼면 동기들이 힘들다.'

목봉체조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훈련을 통해

거대한 집단이 하나로 뭉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단결력을 배우는 것이다.

 


이어서 간 곳은 해병훈병이 가장 가고싶은 곳, 통영관이다.ㅎ

나는 분명 예비역이고, 민간인 복장을 한 채 이곳에 들어왔지만,

훈단을 둘러보니 어느새 해병훈병이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훈련병처럼 배가 고파왔다.

항상 배가 고픈 훈병..ㅎㅎ

천국의 향기가 이곳 통영관에서부터 흘러나와 훈련받는 신병들을 유혹하곤 했었다.

별미인 카레라이스에 돈까스를 순식간에 헤치우고, 달콤한 맛스타를 들이키고 싶었지만,

후배 해병들을 위해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와야만 했다.ㅎㅎ


통영관의 전경.




손 소독기. 신종플루 때문에 들여온 것 같다.




식사 전, 손등 위에 한 스푼씩 얹어 주던 가글용 소금.




쩌렁쩌렁 식사구호가 들려올 것만 같다.



손을 씻는 윤해병.ㅎ
식사는 해보지 못했지만, 아쉬운대로 손이라도 씻어보았다.ㅎㅎ



통영관 다음으로 간 곳은 실내에서 전투수영을 할 수 있는 무적관이다.

내가 신병교육훈련을 받을 때에 한창 공사중이었는데, 어느새 완공되어 멋진 훈련장이 되었다.

이 무적관을 통해 해병들은 날씨에 관계없이 수중훈련을 할 수 있다.

또 수색병과를 지원한 해병들은 진해까지 가서 수영시험을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층 한층 나아지고 있는 후배들의 훈련환경을 보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무적관 출입구의 벽면. 해병의 힘찬 접영.



무적관 내부 전경.



훈련받는 신병들의 모습.



훈련받는 신병들의 모습



어느 후배의 발 뒤꿈치



나는 이 무적관에서 훈련병들을 처음 보았다.

아까 텅텅 비어있던 3대대의 훈련병들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후배해병들을 보자 반가워서 말을 걸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었다.

왜냐하면 신병은 민간인과 허가 없이 접촉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규율을 잘 알고 있었고, 또 훈병들의 과업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참고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후배들의 발 뒤꿈치를 보자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난생 처음 신게 된 워카 때문에 상처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워카와 관련된 추억은 해병대 뿐만 아니라 육해공을 막론하고

모든 군 예비역분들이 마찬가지일거란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고 군에 입대하면 모든 것이 낯설다.

짧게 자른 머리, 치수가 맞지 않은 C.S군복..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워카가 아닌가 싶다.

딱딱하고 무거운 워카.. 

불편한 워카끈을 메면서 신병들은 아침마다 많은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군대에 들어온 것을 실감하며 조별과업을 나간다.

 

물론 훈병 2주차가 되면 워카가 발에 꼭 맞는 신발처럼 편하게 느껴지고,

발에는 날개가 달린 것처럼 움직임도 빨라진다.

하지만 그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저 사진속 훈병의 발처럼 상처가 생겨 있는 것이다.

후배의 그런 상처를 보자 많은 추억이 떠오르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나즈막하게 말을 걸었다..

 

나 - "이봐 훈병.."

훈련병 - "예!!!!!!!훈벼ㅇ.."

나 - "쉿!!!!... 발은 괜찮냐..? 뒤꿈치에 상처 안따가워..?"   

훈련병 - "예!!!! 괜찮습니다!!!!!!!!!!!!!!!!!!!!!!!"

 

;;;

후배 훈련병의 목소리가 너무 씩씩해서 말 걸었던 것이 다 들통났다.ㅎ

교관님이 칼날같은 눈빛으로 이 쪽을 보자, 나는 멋쩍은 듯 자리를 옮겨야 했다.ㅎㅎ

그래도 후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 좋고 흐뭇했다.

역시 씩씩한 훈련병..ㅎ

 

이제 무적관을 나와 공수교육대와 유격교육대를 갈 것이다.

그 곳엔 공수교육과 유격교육을 받는 실무병들이 있다고 했다.

해병대 상륙작전의 3가지 루트인 하늘, 땅, 바다.

인간이 다닐 수 있는 모든 길은 해병대 상륙작전의 통로이다.

그 중 공중침투를 위한 훈련인 공수교육,

산악침투를 위한 훈련인 유격훈련을 보러 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실무에 있을 때 유격훈련은 받았지만,

백령도에 공수교육대가 없는 관계로 낙하산은 커녕 군용기도 구경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공수교육대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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