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디자이너를 꿈꾼다!
자이너 고태용

화려해보이는 디자이너의 세계, 그 이면에 숨겨진 고난과 역경...
이를 극복해낸 서른 한살 젊은이의 도전과 성공 스토리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의상을 협찬한 디자이너, 서울 패션위크 최연소 참가 디자이너 등 고태용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디자이너가 여성스럽고 감성적인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해병대를 나왔다는 것 역시 그의 특이 이력 중 한 부분이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서울패션위크를 통해 혜성처럼 데뷔를 한 지 이제 4년. 사실 이제 막 서른 한살에 불과한 그는 앞서 소개한 장인들에 비하면 아직 너무나 어리고 경험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 본 그의 열정과 감각은 그의 말마따나 몇 년 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될 정도였다.



신사동 가로수길 에 위치한 쇼룸에서 2002년 해병 919기로 입대하여 1사단 33대대에서 군 생활을 마친 그를 만났다. 8명의 직원들 중 같은 중대, 같은 생활실의 후임인 963기 출신 직원이 있다며 웃는 그는 해병대에서 온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버지가 해병대를 나오셔서 솔직히 조금 반강제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잘 갔다 온 것 같아요. 정말 재미있고 좋은 추억으로 기억에 많이 남아요.”

패션계 쪽에 해병대 출신들이 있는지를 묻자 디자이너 쪽에서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 패션업계 일을 하면서 해병대 출신이어서 덕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디자이너 브랜드는 만드는 수량이 워낙 적으니까 공장에서 작업을 잘 안 해주려 해요. 그런데 해병대 출신인걸 알고는 가져오면 해준다고 그러시기도 하고, 원단을 싸게 주시는 경우도 있죠.”

그는 모 대학의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다 해병대에 입대했다. 사실 그 때까지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군대에서 즐겨 읽던 패션잡지가 그의 마음속에 패션에 대한 열망을 점점 키워주었다고 한다.

“말년에는 휴가 다녀오는 애들마다 에스콰이어나 GQ 같은 잡지를 사다달라고 부탁해서 탐독을 했죠. 그 때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보단 나도 이렇게 입어야겠다. 멋지게 입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휴가 나가면 옷 사느라 바빴죠. 어렸을 때부터 워낙 옷을 좋아했거든요.”



                      <서울콜렉션에서 선보이는 그의 작품들> @'Beyond Closet' 사진 제공

어렸을 적부터 옷을 좋아하고 잘 입기로 소문난 그였다. 용돈을 모아 부모님 몰래 옷을 사 입고 친구들과 바꿔입는 건 둘째치고, 어머니가 사주신 옷을 가위질 하고 리폼을 할 정도였다. 워낙에 옷을 좋아했던 그였기에 사회 복지과를 그만두고 가톨릭대 의상학과로 편입한다고 했을 때도 부모는 그냥 그러려니 하시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3학년으로 편입한 마당에 이론적인 부분은 동기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감각과 센스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그가 패션쇼에 서는 디자이너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서울콜렉션을 보러 갔던 그는 디자이너 장광효 씨 등의 쇼를 보면서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교수님들은 대기업에 디자이너로 취업을 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전 제 이름을 건 브랜드를 하고 싶었어요. 서울패션위크에 서고 싶었고. 사실 교수님들도 그게 아무나 하는 건줄 아냐며 무시하셨어요. 사실 우리 학교를 나와서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한 디자이너가 전무했거든요. 그래서 뜬 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고 취업이나 하라고 하셨죠.”


                 <그의 책장에는 지금의 그를 잊게 만들었을 패션잡지들이 수북히 꽂혀 있었다>

동기들은 취업을 준비 할 때 그는 옷을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서울패션위크에 입성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간 것이다. 하지만 연줄도 없고 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닌 그가 서울패션위크에 설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역시 그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컬렉션 협회 중 나이 많은 여성복 디자이너가 많은 한 협회에 들어갔다.

“그 협회가 25년이나 됐는데 남성복 디자이너가 한 명도 없었어요. 그 쪽도 젊은 남성 디자이너가 필요했고, 저는 개인적으로 신청해서는 안 될게 뻔하니까 협회의 도움을 받은 거죠. 제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면서 쇼에 가고 싶다고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수락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신인을 데리고 그렇게 한다는 것이 협회도 무모한 도전을 한 거죠.”

무모했다. 18명의 남성복 디자이너가 쇼에 설 수 있는데 요즘엔 60~70명이 지원할 정도로 경쟁률이 상당하다. 특히 매번 쇼에 서는 기성 디자이너들 틈에서 신인이 쇼에 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서울패션위크에 서는 디자이너는 쇼 한달 전에야 발표를 했지만 그는 쇼 준비를 벌써 3개월 전부터 하고 있었다.

“패션쇼를 한 번 하는데 2천~3천만 원이 들어요. 대학교 4학년 때 온라인쇼핑몰을 하면서 돈을 좀 벌었어요. 애들은 이론 공부 할 때 원단 띄어다가 부산에 가서 신발 만들고 팔았었죠. 그 때 천오백만원 정도를 모았고 집에서 몇 백만 원 정도를 지원 받아서 쇼 준비를 했어요.”

만약 그가 서울패션위크에 초대되지 못한다면 그 자금을 홀랑 날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믿었다고 한다. 사무실도 없는 상황에서 집에서 작업을 했고 집은 패션쇼에 올라갈지 확정도 안 된 옷들로 가득 찼다.


         <원단으로 가득한 수납장. 그의 삶 이면에는 이 곳에서 지샌 수많은 밤과 눈물이 숨어있다>

“난 무조건 될 거니까 안 될 거라는 가정 따위는 하지도 않았어요. 밀어붙이는 스타일. 해병대 나와서 그런 점이 좋았던 것 같아요. 추진력과 자신감, 그리고 믿음. 그런 게 많이 도움이 됐어요.”

그는 그렇게 27살의 나이에 서울패션위크에 서는 최연소 디자이너로 기록되며 홀연히 데뷔한다. 소식을 들은 모교에서는 이제 그를 학과 홍보에 활용하기까지 한다. 클래식함을 젊은 감성으로 담아낸 그의 작품에 반응도 뜨거웠다. 쇼에 공개를 한 옷들이 모두 팔려나갔다. 하지만 그래봐야 본전치기였다. 한 번 쇼를 해서 벌어들인 돈을 다음 패션쇼에 모두 투자하는 식의 순환이다. 하지만 두 번째 서울패션위크에서 그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다.

두 번째 패션쇼 때의 테마는 프레피룩. 국내에선 최초로 미국 명문 사립고 학생들의 스타일을 클래식하게 담아낸 그의 작품에 반응은 뜨거웠다. 방송 제작사에서 그에게 연락을 온 것도 그 때쯤이었다.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를 기획 중인데 드라마와 의상 콘셉트가 일치하는 것 같다며 제작과 협찬이 가능하겠느냐고 연락이 왔어요. 사실 드라마 자체도 재미없어 보이고 주연 배우들도 당시에는 큰 인기가 없었으니까 망설였어요. 하지만 방송에 의상을 공급하는 일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재미로 한 번 해보자고 시작했죠. 그런데 드라마가 정말 대박이 난거죠.”

‘꽃보다 남자’에서 주인공이 입고 있는 세련된 스타일에 팬들은 열광했고, 프레피룩과 고태용이라는 이름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언론의 인터뷰도 이어졌고, CF 에 출연하기도 했다.

“인기의 단점이라면 저만 다루던 프레피룩이 대중화돼서 옥션, 지마켓에 만원, 이만 원짜리 재킷이 프레피룩이라는 이름으로 깔리게 된 거예요. 사람들이 굳이 제 재킷을 40~50만원씩 주면서 살 이유를 못 느끼게 되는 거죠. 반면 장점으로는 돈을 벌 수 있었어요. 꽃보다 남자의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신설 고등학교들의 교복 디자인도 들어왔고, 드라마 출연자들이 CF를 찍을 때 의상을 제공하면서도 많이 벌었어요. 교복 디자인을 한 번 하는데 천만 원을 받았으니까요. 한 번 쇼를 하는데 들어갈 돈의 두 세배를 번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돈으로 지금 컬렉션을 하고 브랜드를 런칭할 수 있었던 거죠.”



고태용 디자이너의 브랜드 ‘Beyond Closet' 은 쇼에 전시되는 컬렉션 라벨과 별도로 캠페인 라벨로 백화점 등지에서 판매가 되고 있다. 어찌 보면 작품을 하는 디자이너 치고는 계산과 셈에 능하다는 느낌도 들 정도이다. 하지만 화려해보이기만 하는 디자이너가 작품만 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얘기다.

“디자이너가 한번 쇼를 해서 옷을 팔고 돈을 벌면 그 돈이 그대로 다음 쇼 비용으로 나가요. 이윤이 없는 거죠. 그러다보면 정말 돈이 없어서 작품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이제 3년 정도 하다보니 흐름을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대기업들과 콜라보레이션도 하고, 다양한 활로를 뚫고 있어요.”

유명 백화점과 편집샵에 그의 옷들이 깔렸다. 작년부터는 뉴욕으로도 그의 옷이 팔리기 시작했다. 미국 내 매장만 300개를 보유한 편집샵 ‘얼반 아웃피터스’에도 그의 옷이 깔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선 백화점에 100장이 나가서 70장만 팔리면 30장이 다시 디자이너에게 재고로 돌아옵니다. 반면 미국은 처음부터 100장을 사가고 돈을 모두 지불하는 식이죠. 재고 부담이 없어요. 백화점은 경기도 안 좋고 안 팔리면 돈이 회수가 안 되니 시즌이 끝나면 빚을 떠안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망한 디자이너도 많죠.”

비즈니스 면에서 ‘꽃보다 남자’의 수식어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 디자이너의 명성은 비즈니스에서 너무나 중요했다.

"미국에서는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몰라도 옷만 예쁘면 구매를 해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A가 신인 디자이너이고 B가 이름이 유명하면 같은 가격에 A의 옷이 더 예뻐도 B의 옷을 사가죠. 그런 면에선 꽃보다 남자 덕분에 고태용과‘Beyond Closet'이 젊은 층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됐죠.”


                     <그는 콜렉션 라벨 외에도 세컨드 라벨을 런칭하여 대중화를 꾀하고 있다>

백화점 입점도 늘어나는 추세다. 요즘 남성들도 꾸미고 사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백화점도 남성복에 전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Beyond Closet'의 컬렉션 레이블은 코트 한 벌의 가격이 70~80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대중적인 세컨드 레이블은 셔츠가 6~7만원, 바지가 7~8만 원대로 일반인이 접근하기에 그리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무난하게 자리를 잡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고민 없이 화려한 생활만 할 것 같았던 디자이너의 삶에 이처럼 치열한 돈과의 전쟁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도 일조를 했지만 요즘 젊은 디자이너가 방송매체에 많이 나오면서 학생들이 한 쪽 면만 보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몰리면서 예전보다 데뷔하기가 더 치열해지고 있죠. 저도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는 그랬지만 다들 화려하게만 생각해요. 패션쇼에 다니고 파티에 참석하고 유명 인사들과 인사를 하고. 하지만 6개월 고생하고 쇼 때만 잠깐 멋있어 보이지 엄청 고생하는 직업 이예요. 옷이 아무리 좋아도 비즈니스가 안 되면 접는 사람도 많고요.”

화려할 것만 같았던 디자이너. 하지만 그 화려해보이던 선배 디자이너들도 알고보니 힘들게 사는 입장이었다. 떼돈을 버는 줄 알았던 디자이너들이 사실은 버는 족족 쇼에 쏟아 붓는 본전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선배들은 고태용에게 일단 3년만 버티라고 했다. 매출이 있건 없건 3년을 버텨야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런 그는 작년에 3년차를 끝냈다. 이 정도면 아주 훌륭히 버텨내는 셈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텃세가 컸어요. 잡지나 방송에서 젊은 디자이너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다들 새로운 디자이너가 들어오는데 많은 거부반응이 있더라고요. 작은 한국 시장에서 디자이너가 늘어나면 파이를 빼앗길 수 있다는 걱정이죠. 서로 협력하고 발전해서 파이를 키우는 방법도 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죠.”



하지만 그런 텃세 역시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 먹고 살기 힘든 디자이너들의 현실 때문이라고 그는 이해한다.

“직접 해보니까 누굴 키울 입장이 아녜요. 당장 자기도 힘든데 누굴 키우겠어요. 그래서 정부에서 많이 도와줘야죠. 다행히 지금은 한국 디자이너의 해외 수출을 적극 지원해줘요. 뉴욕에 나가서 트레이드 쇼를 하면 오백만원이 넘는 부스비도 지원해주고 있죠.”

그래도 젊은 세대의 디자이너들 중에선 빨리 시작했고 많이 노출된 탓에 그는 빠르게 자리를 잡은 편이다. 한국에서 디자이너가 작품을 하려면 옷을 팔아야 되고 옷을 팔려면 이름을 알려야 된다는 걸 일찍 파악했기 때문에 그는 이름을 먼저 알리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디자이너가 너무 상업적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돈을 벌어야 작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는 말한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그의 쇼룸>

옷장 속에 숨어 있는 개인의 취향과 사연을 옷에 담아내고 싶어 'Beyond Closet'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그의 목표는 브랜드를 내셔널 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좋은 컬렉션을 보여주면서 고태용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잡아야하죠. 우영미 선생님이나 정태훈 선생님처럼 이 사람 하면 딱 떠오르는 아이덴티티와 아이템이 있어야죠. 클래식 하면서 프레피를 가미하고 젊은 감성으로 위트 있게 표현한 디자이너. 그런 아이템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만들어야 되고요.”

이런 말을 하는 그이지만 그의 옷에는 분명 색깔이 있고 이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있다. 옷 잘 입기로 유명한 영화배우 류승범씨도 그의 단골 고객 중 한 명이다.

“승범이와는 동갑내기 친구인데 옷에 완전 환장한 애거든요. 류승범이나 봉태규 처럼 잘생기진 않아도 스타일리쉬한 친구들이 많이 오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런 친구들이 입으면 홍보효과도 크죠.”

아직 갈 길은 멀다. 정규과정을 완벽히 밟은 것이 아닌 그의 이력 때문에 초창기 그의 옷은 형태는 훌륭하지만 속 내실이나 디테일에서 부족한 면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 고작 30살을 넘긴 후배디자이너에게 기라성 같은 선배 디자이너들이 해주는 얘기도 비슷하다.

“선생님들은 처음엔 워낙 어린 애가 들어오니까 별로 신경을 안 쓰다가 이제는 컬렉션을 6번 연달아 하기가 쉽지 않다며 칭찬도 해주세요. 디자이너가 꾸준해야 되는데 그 점은 인정할 만하다구요.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재미있다고들 해주시죠. 젊으니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클래식 하지만 젊은 느낌의 클래식을 담아낸다는 거죠. 감각이 좋으니까 숙련도를 많이 올리라는 조언도 해주시구요.”


                   <작년 동대문에서 이미테이션이 급속히 풀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티셔츠>

그의 나이 이제 서른 하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해외시장에서 옷은 팔고 있지만, 그의 쇼를 해보지는 못 했다.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 있다.

“지금 선배님들 나이인 마흔 살쯤 되면, 저는 훨씬 잘 되어 있겠죠. 디자이너로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일찍 시작한 만큼 패션쇼를 30~40번을 했을 텐데 한국 대표디자이너가 되어야겠죠. 돼야 하고 될 수밖에 없어요. 어디 가서 표현은 안 하지만 속으로 남자가 해병대까지 다녀왔는데 최고가 돼야한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해요.”

대한민국 최고의 디자이너가 될 거라는 그는 아이덴티티가 녹아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또 빼놓지 않았다. 손님은 단순히 예뻐서 옷을 사가는 것이지만, 디자이너는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녹아든 작품을 파는 것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2009년 F/W 쇼에서는 Homesick (향수병) 이라는 주제로 밀리터리 룩을 선보였어요. 사람들이 해병대와 군대를 생각하면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나 딱딱한 제복의 이미지만 생각해요. 하지만 해병대라는 곳은 대부분 굉장히 어린 친구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그 20대 초반의 나이는 소년과 성인의 나이 중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여리고 감성적인 나이라고 생각해요. 해병대라는 가장 강한 군대에 와 있지만 속으로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소년의 마음이나 감성을 표현했죠. 겉으로는 밀리터리 스타일의 트렌치코트나 견장 등으로 강한 이미지를 냈지만 내부는 모두 양털 소재로 포근하고 여린 양면적인 느낌을 줬어요.”

이 정도쯤 되면 ‘아 이 사람. 정말 전문가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연말 들어 자선 바자회 등 각종 모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그. 최근 모 기업의 유니폼을 디자인 하고 있다는 그는 개선된 해병대의 체육복도 자신이 디자인 해줬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디자이너 고태용.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농담을 건네는 그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많게 느껴질 만큼 젊어 보였지만,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빛은 노련한 사업가를 보는 듯 했다. 그리고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디자인에 한 평생을 바친 대가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젊은 나이에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에게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 해병들을 위한 한 마디를 부탁했다.

“흔히 ‘된다, 안 된다’를 갖고 고민을 많이 해요. 그러다 포기하는 애들도 너무 많아요. 저도 천재가 아닌 이상은 서울콜렉션을 신청해서 될지 안 될지 몰랐고, 브랜드를 내서 반응이 좋을지 안 좋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전 믿음이 있었어요. 안 된다는 생각, 망한다는 생각은 절대 안 했죠. 난 무조건 될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믿으니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거죠. 해병대에서 얻은 추진력과 자신감과 믿음. 그것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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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06.15 20:41 신고

    정말... 된다고 믿는 그 강념하나...정말 본받고갑니다..

    디자인계열에서 해병대출신인 분은 처음 듣는데요..

    정말 해병대가 만능인것같습니다 ㅎㅎ!

  3. 2013.06.21 23:41 신고

    와..진짜 짱짱짱!!!
    추진력...정말 최고해요!!
    자신을 믿는 그 강한 정신력까지~~

    디자이너른 동경하는 저로서는 한없이 부럽네용~~

  4. 2013.06.22 03:16 신고

    어머!*ㅁ* 잠이 확 깨네요~ ㅠㅠ
    잠 안와서 다시 날마와서 뒹굴거리다가 이것을 지금 보다니 ㅠㅠ
    정말 좋아하는 디자이너인데!!
    우와!!!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역시 해병대에요♥
    앞으로 더 좋아하게 될것 같아요~
    동생 나오면 가장먼저 함께가서 옷사줘야겠네요>_<

  5. 2013.07.17 17:27 신고

    저기 저 모델은 요즘 대세 이종석인가요ㅋㅋㅋ
    패션계쪽에도 해병대 출신이 계셨네요 고태용 디자이너 화이팅!

  6. 2013.07.18 00:39 신고

    나름 재밌게봤던 꽃보다남자 협찬을 하셨네요!
    디자이너 고태용님 너무 멋지십니다
    이종석이 돋보이네요..ㅎㅎ

  7. 2013.10.11 00:14 신고

    해병대는 못하는게 없네요

  8. 1177 우현이여자친구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3.10.24 00:19 신고

    얼굴도잘생기셧당ㅋㅋㅋㅋㅋ

  9. 2014.01.05 21:02 신고

    해병대를 거쳐 가신분들 ~정말
    대단한 분들이 엄청 많으시네요.
    해병인 이라서할수 있나 봅니다^^

  10. 2014.01.06 13:05 신고

    옷이 다들 댄디한게 제 스타일이군요.
    제가 제일 마지막으로 봤던 드라마가 2009년의 꽃보다 남자인데,
    옷을 협찬해주었다니ㅋㅋㅋㅋ
    어디서 뭔가 본 듯한 스타일이였어용

  11. 2014.01.13 03:05 신고

    ㅎㅎㅎ멋잇습니당

  12. 2014.01.14 00:45 신고

    헐..고태용...해병대출신이었구나..우아..신기해요...

  13. 2014.01.26 23:45 신고

    눈이즐거워지는 포스팅이네용...ㅎㅎㅎㅎ해병출신들이 역시.악바리!!

  14. 2014.02.03 14:42 신고

    멋져용><ㅎㅎ

  15. 2014.02.12 07:49 신고

    헐너무멋있어요!!!!!ㅋㅋㅋㅋ

    • 1181 말랑이 수정/삭제> 댓글주소
      2014.02.21 03:17 신고

      잘생긴사람만 입어야 엄청빛날거같은 옷들이에요~ ㅎㅎ 넘 대단하십니다

  16. 2014.02.14 22:02 신고

    꽃보다 남자에 협찬했던 의상들이군요.
    해병인 출신들은 강하고 힘이 먼저 연상되는데
    섬세함을 요구하는 디자이너도 계시다니
    또 다른 해병인을 봐서 좋습니다

  17. 2014.02.16 02:25 신고

    멋있습니다 디자이너님^^

  18. 2014.02.21 03:16 신고

    이렇게 멋진 디자이너도 있다니..놀라워요 ㅎㅎ

  19. 2014.05.24 02:48 신고

    너무 멋있네요!!ㅎㅎ

  20. 2015.01.25 18:34 신고

    강인한 눈을 보니 해병대 정신이 살아 있는것 같네요.
    해병대 정신으로 대한민국에서 최고에 디자인에
    꿈을 이루시는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는 좋은모습 기대하겠습니다!!
    무무적 해병!!
    화이팅!!!

  21. 2015.02.14 00:43 신고

    와!!! 저 맨투맨들 저희 또래들도 많이 입는데 이 디자이너분이 해병대출신이신가요??
    뭔데 이렇게 놀라운지...ㅋㅋㅋㅋㅋ정말 많은걸 알게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