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3기 4기 전우회 사무실을 나와서 제주 북초등학교로 향했다.
사실 전우회에 들른 이유도 이 사진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여쭈어보기 위해서였다.
사진 속에는 3기, 4기 선임들로 보이는 분들이 연병장에서 사열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이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전우회의 선배님들께서는 이 사진을 보시더니,
'어, 이거 우리네.'
하시면서 정확한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셨다.

사진 속의 이 장소는 제주 북초등학교이다.
나는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북초등학교를 입력했는데,
장소에 다 와 갈수록 왜 이곳에서 입도식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곳은 바로 구시가지에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60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 시가지가 맞겠지만,
특히 이곳은 예전 항구였던 산지부두와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려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북초등학교는 원래 작은건지, 아니면 주변이 개발되면서 운동장이 좁아진 건지는 몰라도
꽤 운동장 크기가 작아보였다.

공을 차며 놀고 있던 북초등학교 꼬마들.

사진 속 선배님들께서 사열하시던 장소.

학교 건물과 교단의 위치는 아마 그대로였을 거라고 짐작하고,
사열하는 모습을 촬영한 그 장소에서 사진을 한 번 찍어보았다.
지금은 학교 주변에 아파트도 많이 생기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평화로운 장소이지만,
60년 전에는 전쟁터로 향하는 젊은이들의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을 것이다.
문득 전우회 사무실에서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기들의 명단을
하나하나 정리하시던 선배님들이 생각났다.

학교를 나와 선배님들께서 출항식을 가졌을 산지부두에 가 보았다.
사실 산지부두는 옛날 이름이라, 길을 물어볼 때 모르는 분도 더러 계셨다.
그래서 항구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등대에 올라갔다.

항구 풍경도 북초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등대와 항구. 저 멀리 한반도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ㅎ

제주항의 전경, 이 어딘가가 예전에는 산지부두였다고 한다.

4기 선배님 말씀으로는 언제 전투에 바로 투입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군함 갑판 위에서도 훈련을 받으셨다고 한다.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첫 임무로 인천상륙작전을 펼치신 선배님들이 부러워졌다.
대대급 IBS 훈련도 대단한데,
미 해병대와 함께 인천에 상륙하는 작전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늘 함께 돌아오지 못한 동기가 생각난다는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내 생각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다.
그래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에 대해 잘 모른다.
나 역시 다른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전역하기 전에 훈련받았던 사진들을 자랑스럽게 앨범에 담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야전의 군인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난다.
내가 수행한 2년간의 복무가 얼마나 숭고하고 엄숙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전역할 때까지도 모르다가,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선배님들의 참전수기를 읽어보고 더 고개가 숙여졌다.
어머니를 두고 떠나야 하는 아들의 슬픔,
출항하는 군함 안에서 느꼈던 한 인간으로서의 두려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수많은 전투를 거치면서 점점 악독해짐을 느꼈던 이야기,
원산항에서 퇴각작전을 펼칠 때, 제발 데려가 달라던 한 중년 여성의 울부짖음이
아직까지도 잠자리에서 가끔 들린다는 수기들을 읽고나니,
항상 신화와 같던 선배님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그런 선배님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지금의 풍요로운 혜택을 누리고 있다.
북초등학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이 평화로운 제주항도,
또 그곳을 찾아 여행하는 나도
모두 선배님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제주시 동문로터리에는 그런 선배님들의 업적을 기려 1960년 4월 15일, 해병혼 탑을 세워졌다.





다음은 탑의 우측면에 있는 취지문.. 

- 취 지 -

단군의 역대를 두고 유례없는 백의민족의 수난 6.25 동란을 상기한다.
국운명멸의 기로에 선 민족의 살상은 금수강산을 혈루로 물들였고 육골은 산야에 허덕일 때,
좌시보다 죽음으로 구국의 대도를 자향하여 민족의 지침이 되겠다고
십대의 젊은 이 고장 학도들이 바로 충무공의 넋을 이은 대한해병 이었다.

세기의 전사에 찬란한 인천상륙작전은 세인공지의 사실이며,
대한민국의 운명을 반석위에 안치케 하였다.
생존한 우리 해병제대장병은
이고장 건아 앞에 호국정신의 계승의 표식을 계시하는 뜻과
대한의 영구한 번영을 기하는 붕지에서,
여기서 지난날의 전력을 더듬으며 그 역력한 전공을 추념하고
영구불멸의 상징의 탑을 이 고장 한라록에 세우노라.

탑 건립에 제하여 해병대령 이서근, 예비역 고철수, 문상률, 김형근 동지들의
희생적 노고에 감사를 표하면서

단기 4293년 4월 (서기 1960.4)
건립대표 장시영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 여행을 돌이켜보니,
조금 엄숙하긴 했지만, 제주도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어 뿌듯했다.
수학여행으로 왔을 때엔 마냥 즐거운 휴양의 섬인 줄로만 알았는데,
해병이 되어 다시 오니, 제주도가 관광명소가 아니라
나라가 위태로웠던 1950년, 구국의 보루였던
호국도(護國島)로 느껴지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제주도의 또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는 해병이라는 사실이
이날따라 더욱 자랑스러웠다.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대한민국 해병대 첫 임무, 진주 공비토벌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민심과 함께하며 탁월한 게릴라 소탕 능력이 검증된 해병대는 이후 4.3사태가 일어난 제주도로 급파된다.

 

제주도의 게릴라들은 이미 4.3사태 수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었다. 광복 이후 3년 동안의 정치적 혼란기에는 여러 차례 행정기관을 습격하며 치안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었다. 당시 제주도에 파견되어 있던 500명의 경찰관과 1개 보병대대는 산발적 습격을 막기에도 벅찼다. 결국 게릴라들은 5.10 총선거를 방해하고 제주도를 공산주의 세력 확산의 근거지를 만들려는 계획으로 제주도 내 15개 경찰지서 가운데 14개를 기습하여 방화하고 민가를 습격하여 학살을 일삼기 시작했다. 이후 증편된 병력으로 소탕작전을 한 결과 공비의 수는 크게 줄어 있었지만, 100여명의 잔존 세력들이 여전히 치안을 위협하고 있었다.

 - 제주도에서 작전을 위해 출동하는 해병대 -

 

해병대는 이 제주 경비 임무를 넘겨 받았는데, 진주 게릴라 소탕작전과 마찬가지로 민심수습이 가장 큰 과제였다. 공산주의자들의 무차별 폭동은 물론 군과 경찰, 서북청년단 등의 반공단체가 과잉진압을 한 탓에 제주도민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제주도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3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제주도 전체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이를 수습하려면 진주에서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 공비토벌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 -


 

나는 비행기 안에서 위와 같은 4.3 사태와 관련된 역사 자료를 읽으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제주도는 내게 수학여행의 추억만 가득한 곳이었지 이런 비극적인 역사가 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배운 4.3사태가 단순한 공산 세력의 반란인 줄로만 알았지, 대규모 군 병력까지 동원될 만큼 이념대립이 심각했던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제주도가 부산 못지않게 6.25 전세역전의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미 해병대와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연대 규모의 병력이 필요했다. 당시 제주도에서 게릴라를 소탕하던 해병대는 3 4기 해병대원들을 제주도에서 급히 모집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6.25 전세역전의 결정적 작전에 참여한 한국군이 제주도에서 모집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해병대 창설부터 6.25 당시 구국의 과제를 떠안기까지 매우 드라마틱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여수 순천 반란사건을 계기로 해병대가 창설되고, 첫 임무 역시 진주 게릴라 소탕작전을 맡았다. 그 때문에 제주도 공비토벌작전도 맡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인천상륙작전의 기반이 된 3 4기 해병들을 모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나라의 위기를 내다보고 만들어놓은 것처럼 해병대는 미리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 해병대 3기 4기 전우회 -

 

나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제주시의 해병대 3 4기 전우회를 찾았다. 실제 전쟁에 참여하셨던 선임들의 말씀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무실 안에 들어서 우렁차게 경례하는 나를 선임들께서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나는 얼마 동안 그 자리에서 얼어있었던 것 같다. 사실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실무에 처음 이등병으로 들어갔을 때, 996기 선임이 너랑 나랑 몇 기수 차이니?’하고 물었던 게 생각났다. 그 당시에도 까마득한 느낌이 들면서 몸이 얼어붙었었는데, 지금 내 앞의 이분들과는 도대체 몇 기수 차이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 단순한 숫자계산을 할 수 없을 만큼 머릿속이 하얘졌다.

- 참전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해병 4기 김동학 해병님 -



 긴장한 나를 다독여주시며 선임들은 옛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까마득한 옛 일의 연도와 날짜까지 정확하게 짚어가며 설명을 시작하셨다. 세 분께서 서로에게 부족한 설명을 덧붙여주며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정말 역사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역사이자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특히 세 분 중 나이가 한 살 더 어린 박영찬 해병님은 당시 징집대상도 아니었다. UN이 정한 국제협정에 따르면 만16세 이상이 징집대상이었지만, 박영찬 해병님은 나이를 속이고 자원 입대했다. 경기관총 사수로 근무하며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해 6.25때 해병대가 수행한 거의 대부분 작전에 모두 참가하셨다고 한다. 현재 군복무 기피현상도 있는데, 정말 존경스러운 일을 하셨다고 말씀 드리자, 손을 저으시며 말씀하셨다.

 

그 땐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제주도민이 그런 마음으로 자원 입대했다. 우리 동기인 김진부씨는 키가 작아 불합격 통지를 받았는데, 혈서까지 써가며 재지원하여 해병이 되었다.”

 

참 숙연해지는 말씀이었다. 그런 내게 박영찬 해병님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하셨다.

 

우리가 인천상륙작전을 하면서 미 해병대원들과 아주 친해졌었지. 미 해병들은 우리와 달리 보급수준이 아주 좋았어. 군복이나, 음식이나 모두. 그래서 늘 부러워했는데, 어느 날 한 미 해병이 나보고 자신의 최신 M-1 소총과 내 99식 소총을 바꾸자는 거야. 나야 좋긴 한데, 하도 궁금해서 왜 구식이랑 바꾸려 하냐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설명해주더라고. 최신 M-1 소총은 미국에 가지고 돌아가면 반납해야 하지만, 99식 소총은 엽총허가를 받아서 가지고 나갈 수 있다는 거야. 전쟁에 참여한 증거품으로 총 만한게 어딨겠어. 자기도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거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역시 짜세를 추구하는 것에는 국경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선임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기념사진을 찍어도 괜찮은지 여쭈어보았다. 선임들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고, 전우회 깃발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녀시대와 기념사진 찍은 것 보다도 훨씬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이제 다음 행선지로는 1950년 당시 대한민국 해병대의 발자취를 따라 제주도를 여행할 것이다. 책에 나와있는 사진 속 장소와 지명에 대해 전우회 선임들이 친절히 설명해주셔서 금방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임들께 경례로 인사드리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나도 모르게 처음보다 더 큰 경례소리가 나왔다.

 

참전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기합이 들었나 보다.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1949 4 15,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신현준 사령관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교육훈련 방침을 제시하였다.
 

첫째, 해병대는 일치단결하여 유사시를 대비하여 교육훈련에 정진하자.

둘째, 백성들에게는 양이 되고, 적군에게는 사자가 되자.

셋째,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자유를 수호하는 역사를 창조하자.

해병대가 맡은 첫 임무인 진주 게릴라 소탕작전은
위의 선견지명이 그대로 들어맞게 된 계기였다.
게릴라 소탕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이다.
마오쩌둥은 일찍이 게릴라 부대는 물 속의 물고기 같다.’라고 했는데,
이는 주민들을 게릴라의 영향력으로부터 떼어놓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창설일부터 백성들에게는 양이 되도록 교육방침을 받은 해병대가
그런 첫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저녁 무렵에 진주에 도착했는데, 진주의 명소를 둘러보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빨리 둘러볼 수 있는 곳을 지도에서 찾았고,
시내 안에 있는 진주교대가 눈에 들어왔다.
진주사범학교는 게릴라 소탕작전을 맡은 김성은 부대가 본부를 두고 주둔했던 곳이다.
게릴라가 인근 산을 근거지로 하면서 진주를 습격할 것이었기 때문에
시내에서 경비 임무를 주로 맡아야 했다.
당시 진주 시민들은 공산주의 추종세력의 폭력뿐만 아니라,
정부의 과잉진압, 반공운동가들의 보복으로 인해 2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애민정신이 투철한 해병대는 백성 없이는 군대도 없다.’는 표어 아래
진주 주민들의 민심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추수기에 부대외출을 금지하면서까지 병력을 보내 농민들의 바쁜 일손을 도왔고,
순회강연, 반공영화 상영 등을 통해 게릴라에 대한 경계심 고취는 물론
해병대의 신뢰를 높이고자 애썼다.



1949년의 진주 사범학교


나는 진주교대 교정에서 사진 속 건물이 현재 남아있는지 찾아보았지만,
학교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 건물들은 전부 없어졌다고 한다.
학군단 건물이 비슷해 보여서 사진 한 장만 찍은 채, 진주교대를 나서야 했다.
하지만 정문에서 교육탑으로 이어지는 도로나 주차장 주변이 모두
선배님들께서 첫 임무를 준비했던 곳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전에 한번도 와 본적 없는 곳이었지만,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진주교대 교정


진주교대 학군단 건물


날이 완전히 저물고 배가 고파왔다.
나는 진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지인의 추천에 따라
육회비빔밥을 먹으러 J식당에 갔다.
옛날에는 전주비빔밥보다 더 알아주고 유명했다고 하는데,
널리 상품화하지 않은 탓에 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한다.
지인의 추천대로 육회비빔밥은 정말 맛있었다.
곱빼기를 시킬 걸 하는 후회가 들 정도였다.
작은 사발에 선지해장국도 나오는데, 그 국물 맛도 일품이었다.


육회비빔밥... 아 군침..ㅎㅎ


슥슥 비벼서 한숟갈ㅎㅎ


시원한 선지국

지금 여행기를 쓰며 사진을 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침이 조금씩 고이는 것 같다.ㅎㅎ
사실 곱빼기를 시켜도 말끔히 비울 정도로 배가 고팠지만,
일부러 곱빼기를 시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인이 육회비빔밥보다 더 열을 올려가며 강추한
빵집에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빵집은 중앙시장에서 진주시민 아무에게나 물어도 길을 안내 받을 수 있다.
팥으로 승부하는 이곳은 진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예전에 간첩이 잡혀가면서 이 집 빵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말을 했을 정도.
이 날 후식까지 아주 맛있게 먹어서인지,
찜질방에서 잘 때, 군것질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ㅎㅎ


                                     팥을 듬뿍 얹어주는 찐빵



                         찐빵 안에는 팥이 그리 많이 않아도 된다.ㅎ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진주성으로 향했다.
임진왜란 때, 김시민 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였고,
논개가 왜장을 안고 남강으로 뛰어내린 곳이기도 하다.
이 유서 깊은 진주성은 진주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데,
마치 서울을 작게 축소시켜 놓은 것과 같다.
시내 한가운데에 남강이 흐르며, 그 위로 다리들이 놓여져 있고,
도시 한가운데에 옛 성터가 있다.
진주시를 여행하면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처럼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내가 서울에서 만났던 외국인들도
이처럼 과거와 현대가 함께 공존하는 풍경에 열광하곤 했다.
진주시는 분명 외국인들이 한눈에 반할만한 전통과 멋을 간직하고 있었다.
도시 곳곳에 몇 대째 내려오는 식당들도 괜히 많은 것이 아니었다.


                                              진주성 입구


                   도심 속 성터, 그 아래 논개가 몸을 던진 의암이 있다.

진주시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예찬을 하다 보니,
내 본래 임무를 잠시 잊고 있었다.ㅎㅎ
사실 내가 이 진주성에 온 이유는 해병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진주에 주둔하며 선배님들께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진이 있는데,
그 곳이 촉석루 아래 의암이다.
내가 진주성을 관람할 때는 9시 이전이라,
아직 성내의 모든 문을 다 개방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의암까지 내려갈 순 없었다.
하지만 남강에서 수영을 하며 망중한을 즐기던 선배님들을 떠올리면서
멀리서나마 풍경을 담아두었다.


                    진주 주둔 때, 의암에서 망중한을 즐기던 선배님들


해병대와 관련된 진주성 안의 두 번째 명소는 북장대이다.
진주에서 첫 임무를 수행하고, 토벌 기념사진을 이곳에서 찍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념사진 속 건물이 촉석루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촉석루가 아니라 북장대이다.
북장대는 임진왜란 때, 병사들을 지휘하던 곳으로 지금의 지휘통제실 같은 곳이다.
아마도 해병대 선배님들이 임진왜란 때 왜구를 격파한 김시민 장군을 떠올리며
이곳에서 작전성공 기념촬영을 했던 것 같다.

                                         공비 토벌 작전성공을 기념한 사진


                                                    현재 북장대의 모습


시내로 나와 당시 게릴라가 습격했던 재판소나 경찰서를 가 보고 싶었지만,
그 건물들은 지금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해병대와 관련된 장소들은 모두 돌았으므로 진주의 일반 관광명소를 둘러보았다.
진양호, 동물원을 보고 소싸움 경기장까지 둘러보았는데,
진주는 정말 꼭 한번 와 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ㅎㅎ
내 고향 제천에도 아름다운 청풍호가 있지만,
진양호처럼 평화로운 풍경을 제대로 연출하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해마다 댐이 조절하는 물의 양이 많아서 수심이 크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박시설이 생기기 어렵다.
하지만 진양호는 강의 하류에 있어서 그런지 수심 변화폭이 크지 않아
정박시설은 물론 예쁜 요트도 아주 많았다.
마치 유럽 호수의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평화로운 진양호의 풍경


                                          진양호와 댐 전경


                    진양호의 경치와 어우러져 지중해를 연상케 하는 전망대


             사진찍기 위해 유인하던 내 티켓을 뺏은 원숭이. 정말 재빨랐다..ㅎㅎ
                        그라믄 안돼~~ 사진사 티켓 뺏고 그래선 안돼~!!


진양호를 구경하고 내려와 바로 근처에 있는 소싸움 경기장에도 꼭 들러보아야 한다.
여행에 색다른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좋은 풍경, 좋은 먹거리를 즐기는 것으로는 2% 부족하다.
평소 축구광인 나는 여행할 때 축구경기 관람 없이
명소만 돌아보는 것을 매우 지루해하는데, 이 날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싸움을 보면서 작은 콜로세움에 온 것 같은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소싸움 경기장 입구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가 검투사로 다시 태어나던 그 경기장과 비슷하다.


           왼쪽 정촌이와 오른쪽 김삿갓의 대결. 근성있는 정촌이가 이겼다.ㅎㅎ 


                                          소싸움 깃발


나는 저 글씨를 보고 한참 고민했다.
우주? 우주가 뭐지? 내가 생각하는 그 우주공간 맞나?
조심스레 여쭈어봤다가 괜히 웃음거리만 되었다.;;ㅎㅎ
'소 주인'이란 뜻이다...;;;ㅎㅎㅎ


진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동안 나는 친구들에게 진주자랑을 늘어놓았다.
특히 해병대 후임들에게 꼭 한번 여행 가 볼만한 곳이라고 강력 추천했다.
해병대가 첫 임무를 맡았던 상징적인 도시이기도 하지만,
그 첫 임무와 관련된 유적지를 떠나서 굉장히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아름다운 도시를 위해 우리 해병대 선임들이 임무를 수행했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뿌듯했다.

다음 상륙할 곳은 외부에 잘 알려진 한국의 대표 관광명소, 제주도이다.
하지만 이곳의 해병대와 관련된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해병대가 진주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이번엔 제주도 공비토벌의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진주에서보다 훨씬 난감한 임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어려운 임무를 헤쳐나가며 해병대는 1개 연대규모의 병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는 후일 미 해병대와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할 기반이 된다.
대한민국 해병대가 진해에서 태어났다면, 본격적으로 성장한 곳은 바로 제주도.
그저 관광명소로만 알고 다녔던 나는
전과 다른 각오와 기대감으로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내가 현역 근무할 때, 덕산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해병대 사령부를 일컫는 말이다.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창설되었기 때문에
해병대 사령부가 자리를 옮겨도 그 명칭은 계속 덕산대로 불리게 된 것이다.
본부가 비록 다른 곳에 있을지라도 그곳을 덕산대라 부르며 처음 탄생을 잊지 않는 마음. 나 역시 현역으로 근무할 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마크사에서 파는 각개티, 더블백 뒤에 쓰여진 ‘since 1945 덕산’이라는 글귀를 보면서
항상 그곳을 떠올리곤 했었다.

 전날 심중위님과 만나서 늦게 들어왔지만,
진해를 가기 위해 아주 일찍 일어났다.
전날까지 장거리 운전을 해서 피곤할 법도 한데,
내륙 촌놈이라 그런지 바닷가를 보러 가는 길이 신나기만 했다.
차로 1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진해 사령부.
전날과 마찬가지로 날씨는 엄청 포근했다.
기대에 부푼 마음에 부대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 해병대와 관련된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창설 당시 사용했던 비행장 격납고라든지, 본부 건물은 둘째 치고,
포항으로 이사 오기 전의 진해 신병교육훈련단 흔적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진해 사령부를 병풍처럼 둘러싼 산자락에
돌로 만든 해병혼 세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고,
이곳이 과거에 해병이 존재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진해 사령부 앞의 해병혼 고지 때문인지,
해병대가 있는 곳엔 어디든 해병혼 고지가 전통처럼 있었다.
포항 1사단의 유격장 가는 길도 그랬고,
내가 근무했던 63대대 앞에도 해병혼 고지가 있었다.
진해의 해병혼 고지를 바라보니,
문득 현역 시절 63대대 위병소 근무를 설 때 선임이 해주었던 농담이 떠올랐다.
해병혼 고지는 대부분 비슷하게 생겼는데,
각 글자마다 봉우리가 있고, 가운데 글자인 병자의 봉우리가 가장 높다.
그 세 개의 봉우리들을 군생활에 빗대어 선임들은 이런 농담을 즐겨 했다.

‘저 산이 왜 해병혼 고지인 줄 알아?
저게 바로 해병 군생활이기 때문이야.
자 이제 왼쪽에서부터 군생활 시작한다~
처음 이병! 아주 힘들어~
낑낑대면서 힘들게 올라가서 해자 즘에서 일병 달았어.
아 근데 쉴 틈이 없네. 올라가야지 뭐.
계속 앞만 보고 낑낑대며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상병달고 군생활 반 온 거야.
저기 병자 가운데 고지에 온거지.
하~ 이제 좀 편한가부다 하고 내리막 좀 타려는데, 어디 그렇게 냅둬?
병장 달 때까지 또 고생 좀 해야지..
그러다 병장 달고
그 때부터 편하게 내려오면서 산 옆에 서 있는 탱고타고 집에 가는 거야. 알겠어?
너 지금 어디야. 아직 해자도 못 올라왔네?ㅋㅋ
열심히 올라와. 그러다 보면 너도 편히 내리막길 걸을 때가 올 거다.’



나는 선임의 이 농담이 아주 재미있었다.
근무를 서며 남은 군 생활을 세어보는 해병의 심정이 담긴 이야기 같았다.
이 재미난 농담을 들으며 속으로 ‘저 이야기는 누가 처음 지었을까?’했는데,
진해의 이 해병혼 고지를 보니 왠지 이때부터 전해 내려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해병혼 고지를 바라보며 한참을 걸었는데,
해병대 발상탑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지나가는 해군 상사분께 여쭈었더니, 길을 돌아 계단 위로 올라가면 있다고 하셨다.
해병대는 1949년 덕산비행장의 격납고에서 창설되었다고 들었는데,
발상탑이 언덕위에 있어서 조금 의아해했다.
하지만 발상탑이 있는 언덕 위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계단 옆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던 해병혼 고지가
발상탑에 올라가니 탁 트인 전경을 연출하며 마주 보고 있던 것이었다.




발상탑 앞의 향로를 보니 제단 같은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해병대 처음 세운 곳’이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엔,
가슴속에서 조용히 솟구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왜 해병대 발상지 혹은 해병대 창설탑 같은 간단한 문구를 두고,
해병대 처음 세운 곳이라는 풀어서 쓴 문구를 넣었을까.
줄여 쓴 한자어가 아닌 풀어 쓴 우리말을 넣은 이유는
해병대가 창설될 당시의 상황을 보다 잘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는 상부의 지시로 일순간에 쉽게 창설된 부대가 아니다.
1948년 여수 순천 반란사건을 진압하며 필요성이 제기되긴 했지만,
당시 해군 수뇌부와 달리 해병대 창설에 회의적이었던 국군 수뇌부 때문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열악한 환경을 딛고 일어난 선배들을 기리는 문구로는
간단한 한자어보다 풀어 쓴 우리말이 훨씬 더 어울린다.
쉽게, 일순간에 생긴 것이 아니라,
힘에 힘을 보태어 처음 이곳에 해병대를 세웠다는 뜻이다.
그 어떤 황금탑보다 멋진 우리 해병대 발상탑.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대의 정신은 처음 창설부터 이렇게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진해 사령부 내에 해병대와 관련된 것은 이 발상탑이 전부라고 한다.
혹시라도 더 있을지 몰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모두 이 발상탑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떠나기 전, 책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이 기억에 남아
덕산 비행장 활주로에서 잠시 내려 셔터를 눌렀다.
이렇다 할 연병장도 없었던 초창기의 해병대원들은 이 활주로를 훈련장으로 삼았는데,
시멘트로 된 활주로에서 포복훈련을 할 때에는 바닥이 피로 흥건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열악한 여건을 똘똘 뭉치는 계기로 삼았던
선배님들의 사진 속 모습이 떠올라 활주로 주변을 카메라에 담았다.

                                                 덕산 비행장의 활주로


                              창설 초기 활주로 주변에서 받던 선배님들의 훈련

사령부를 나와 간 곳은 안민고개이다.
안민터널이 생기기 전까지 진해와 창원을 이어주던 이 고개는
초창기 해병의 대표적인 훈련코스였다.
가파른 이 고개를 넘어 정상에 섰을 때엔 눈물을 쏙 뺀다 하여
해병들 사이에서 눈물고개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면 백령도에도 눈물고개가 있었다.
 63대대 앞 이름은 숨이 깔딱깔딱 넘어간다고 해서 깔딱고개.
공식적인 명칭들은 아니지만,
행군에 지친 해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다.
내가 갔던 이 날 안민고개는 벚꽃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뽐내고 있었지만,
이곳을 눈물과 땀으로 넘었을 선배님들을 생각하니 숙연해지기도 했다.

                                      안민고개에서 바라본 진해시 전경

                                         안민고개 정상의 안민생태교


이 아름다운 안민고개는 벚꽃을 만끽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로 개발 되었는데,
드라마 로망스에서 김재원, 김하늘 배우가 열연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안민고개 말고도 여좌동의 여좌천에서도 드라마 로망스를 촬영했는데,
진해의 아름다운 벚꽃이 TV를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군항제가 전국적인 큰 축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갔던 이 날은 군항제 축제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벚꽃이 만개하지 않았다. 을씨년스러운 봄 날씨 때문이었는지 꽃이 아직 다 피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천안함 사태로 인해 군항제의 모든 군 행사가 취소되면서
시 전체가 숙연한 분위기였다.




벚꽃을 감상할 수 있는 또 다른 코스인 해군 사관학교는 더욱 그러했다.
군항제 기간 동안 일반에 해군 사관학교를 개방하여
교정의 아름다운 벚꽃과 바닷가 경치를 시민들에게 선사했었지만,
이 날만큼은 더 없이 슬퍼 보였다.
고 한주호 준위님께서 생전에 근무하셨던 UDT 부대가
해군 사관학교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해병을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해군을 위해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다른 시민들 역시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사관학교를 둘러보고 있었다.
시민들은 교정의 벚꽃을 보러 왔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몸을 바치겠나이다.’라는 손원일 제독의 어록비 앞에서
한참 머물러 있곤 했다.




해병대와 해군은 처음 창설부터 지금까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병들의 존경을 받아온 해병대의 많은 장군님들이 이 해군사관학교를 나오셨고,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인 손원일 제독께서는 해병대를 특히 아끼셨다.
그런 해군이 친척과 같기에 더 슬펐고,
백령도에서 근무했던 경험 때문인지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 교정을 걷고 있었는데,
6.25 때 바다의 수호신이었던 백두산함의 마스트가 보였다.
해군 창설 이후 제대로 된 전투함이 한 척도 없던 상태에서 미군으로부터 구입해
부산항의 안전을 확보하고 반격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백두산함.
그 초대 전투함을 기리기 위해 마스트만 따로 이곳에 전시해 두었다.
높이 솟은 백두산함의 마스트를 보며,
지금의 힘든 시간을 잘 극복하여 다시 대한민국 해군의 웅지를 높이길 기원했다.


                                                백두산함 마스트


    해군 사관학교 내의 기념품판매점 풍경. 곳곳에 해병대의 기념품도 눈에 띈다.


사관학교를 나와 고속도로 입구로 차를 몰았다.
이제 해병대가 첫 임무를 맡았던 진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해병대 1기, 2기 선배님들께서 활주로를 피로 물들이고,
천자봉과 안민고개를 넘나들며 갈고 닦은 실력을 처음으로 보일 기회가 온 것이었다.
1949년 여름, 해병대 창설의 필요성을 일깨웠던 여수 순천 반란사건의 잔당들이
지리산을 근거로 경상남도 일대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공비토벌을 성공적으로 이끄셨던 1기, 2기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고 생각하니, 당시 진해를 떠나시던 선배님들의 비장한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주둔지로 삼았던 진주교대, 토벌 작전 성공 기념으로 사진촬영을 한 진주성부터
무장공비가 그렇게 맛나게 먹었다는 찐빵집까지
진주에 해병대가 거쳐간 곳은 모두 가 볼 생각이다.
진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마치 첫 근무를 들어갈 때처럼 설레이기 시작했다.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해병에게 포항은 특별하고, 포항이라는 도시에 있어서도 해병은 특별한 존재이다.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 뜬 포항 경제를 살리는 3가지를 꼽은 기사를 보았는데,
그 세가지는 바로 포항제철, 과메기, 호미곶이었다.
솔직히 포항제철 과메기까지는 이해 간다만..
아니 호미곶이 해병대보다 포항 경제에 훨씬 더 이바지한다는 말인가..?ㅋ
약간은 서운한 생각에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해병들의 원성섞인 말들..ㅋㅋㅋ
사실 뭐 호미곶보다 해병 1사단이 경제적으로 덜 이바지하면 좀 어떠하리..
포항 시민들에게 해병은 다 같은 아들이고, 해병에게 포항은 제2의 고향인데..ㅎㅎ

나 역시 누군가 제2의 고향을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포항을 말할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충청도 토박이지만,
왠만한 포항시민도 잘 가지 않은 길등재를 올라 보았고, 도구해안 똥물도 먹어 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주저않고 포항을 제2의 고향이라 말하고 싶은 이유는
훈련병 시절 가장 힘든 양포행군을 할 때,
내게 쵸코바를 몰래 쥐어주시던 포항 아주머니.
겨울비에 홀딱 젖어 어깨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채로 행군하던 내게
'많이 춥제..?'하시며 쵸코바를 손에 쥐어주시던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
'어머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뻔했다.ㅎㅎ

나 말고도 이런 경험을 한 해병들은 수없이 많았다.
빵을 받았다는 훈련병, 예비역 선임으로부터 담배 한갑을 건네받았다는 동기 등,
마치 고향 선배나 옆집 아저씨를 만난 것 같은 경험담은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만큼 포항 시민들에게 해병은 자식과 같은 특별한 존재이며,
해병에게 포항은 고향과 같은 따스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포항 교육훈련단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간 곳은 방금 말한 것처럼
나에게 고향과 같은 추억을 남겨준 부대 밖의 장소들이다.
힘들게 넘었던 길등재,
천자봉 행군을 마치고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의 오어사 저수지,
그 저수지 아래 공터에서 주먹밥을 먹던 추억,
비록 해병들의 다이나믹한 모습들은 담을 수 없는 말 그대로 추억만이 남아있는 장소였지만,
내 눈에는 함께 힘든 행군길을 걸었던 동기들이 보이는 듯 했다.

길등재에서 1039기 후임인 오해병과 함께.ㅎ

길등재를 올라오는 길.

길등재 비석의 기념비문.

아래는 비문의 내용..
길등재
도로개설 기증 기념비

포항특정경비지역사령부는 진정한 애민 애향의 해병대 정신으로
수많은 장병들의 땀과 정성을 모아 방산, 정천리 일대 지역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험난한 길등재 산악 지형에 도로를 개설,
내고장 우리지역사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포항시에
기증해 드립니다.

이 당시 지휘관이셨던 전도봉 장군님은 6여단장으로 재직하셨던 것이 기억나서 더욱 뜻깊었다.
이 기념비처럼 해병은 포항이라는 보금자리를 받은 만큼, 포항시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국민에겐 양같이, 적에겐 사자같이'라는 신현준 초대 사령관님의 유명한 말씀처럼,
해병은 항상 국민과 함께 해 왔고, 선봉 1사단은 포항시민과 함께 해 왔다.
나에게 쵸코바를 건네주셨던 그 아주머니도 이처럼 해병을 가족같이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길등재에서 내려와 다음으로 간 곳은 천자봉 아래의 오어사이다.
사실 오어사라는 절은 해병 훈련병에게 특별한 기억이 아니다.
훈련병은 천자봉 행군을 하면서 오어사를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힘든 천자봉 행군을 하고 내려오면서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호수의 경치는
모든 해병들의 추억속에 남아있다.
나는 천자봉 행군을 마치고 돌아오며 커다란 표지판을 한참 쳐다보았었는데,
그것은 오어사로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었다.
'이 오어저수지의 이름이 오어사에서 온 것이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 다음에 전역해서 포항에 오면 꼭 오어사에 들리리라 다짐했었다.
그때는 한참이 지나서야 이곳에 다시 오게 될 것 같았는데,
이렇게 빨리 다시 찾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오어사 저수지 아래의 공터. 이곳에서 주먹밥을 먹었다.

이 공터를 보면, 절대 잊지 못할 재밌는 추억이 하나 있다.ㅎㅎ
천자봉 행군에 배가 고픈 해병들은 점심식사로 받게 될 주먹밥만을 기다린다.
훈련단에서 오며가며 마주친 선임들이
'천자봉 행군하고 먹는 주먹밥이 통영관 돈가스보다 맛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군을 얼마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해병들은 주먹밥만을 그리는데,
막상 도착해서 배급받은 주먹밥은 초등학생의 주먹만하게 느껴졌다.
그 두개의 주먹밥을 허겁지겁 먹고 나서도 허기가 가시지 않아 교관님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는데,
평소 엄청 무서웠던 김귀학 교관님이 왠일로 따스한 말을 꺼내셨다.

"주먹밥이 남았다. 배가 고픈 해병..!"

그러자 눈치도 없는 나와 동기들은 개떼처럼 몰려들면서 관등성명을 외쳤다.

"훈병 ㅇㅇㅇ!!!!!!!!!"

그러자 교관님은 기다렸다는듯이

"지금 관등성명 댄 사람 전부 준....비..!!"

"악!!!!!!!!!!!!!!!!!"

교관님의 입에서 떨어지는 '준비'라는 단어는 훈병들에게 참 무시무시한 단어이다. 
체력증진과 정신수양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는 '쪼그려뛰기'를 준비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해병이 한낱 주먹밥 앞에서 품위를 떨어뜨리다니.. 쪼그려뛰기 100회 실시!!!!!!! 삑~~!!!!"

"하나!!!!!!! 두울!!!!!!!!!!!"

일부러 장난을 치셨던 교관님은 이내 쪼그려뛰기 기합을 거두시면서
'해병은 구걸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기셨다.ㅋㅋ
잠시 긴장했던 우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웃었지만,
동기는 안중에도 없이 주먹밥에 달려들었던 자신이 부끄러워 남은 주먹밥을 서로에게 미뤘다.ㅎ

오어 저수지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던 주먹밥..ㅎ
행군을 마치고 먹은 주먹밥은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오어사 저수지.

아름다운 저수지의 풍경

언덕위의 절.

오어사 안에 있는 종.

익살스러운 모습의 동자승 인형.

오어사 안에는 많은 동자승 인형이 있다.


오어사와 저수지를 둘러보고 내려왔는데,
저녁시간까지 약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KAAV탑승을 했던 도구해안을 둘러볼까, 호미곶을 둘러볼까 하다가
포항 스틸러스 경기장에 가보기로 했다.
오해병과 나는 6여단에서 같이 근무할 때,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오해병은 안양초등학교 시절 축구부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기도 했는데,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가서 당시 요코하마 마리노스 유스팀에서 있던
이나모토 준이치로와 함께 경기도 뛰어봤다고 했다.
2002 월드컵 때, 노란 머리를 하고 벨기에전에서 골을 넣었던 일본의 축구스타 이나모토.
월드컵 직후 아스널까지 이적했던 일본인이 자랑하는 유망주였다.
아무튼 그만큼 축구를 잘하고 좋아하던 오해병과 나는 축구에 있어서 통하는게 많았는데,
여유 시간이 생긴 이 때에도 우리 둘은 망설임 없이 단숨에 스틸야드로 달려갔다.

오후 늦게 도착한 포항 스틸러스의 홈구장, 스틸야드.

사실 포항 스틸러스와 해병대는 관련이 없지 않다.
아니, 관련이 크다.ㅎㅎ
K리그 평균 관중은 2만을 넘기 힘든데,
해병대는 포항 스틸러스 경기때마다 꽤 많은 수의 고정 관중을 보장해준다.
이는 구단의 입장료와 직결되지 않더라도 다른 형태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것은 바로 해병의 무시무시한 응원열기..ㅎㅎㅎ
1개 대대만 있으면 왠만한 K리그의 야성적인 원정팬들도 이곳 스틸야드에서는 맥을 못춘다.ㅋㅋ
해병의 상징 색깔인 붉은색 상의 체육복과 포항 홈 유니폼인 붉은색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치 해병대가 포항 스틸러스를 위해 붉은 옷을 입은 것처럼,
포항 스틸러스가 해병대를 위해 붉은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포항 스틸러스의 승리에도 적지 않은 공을 세웠던 해병대.
K리그를 보며 즐거운 주말을 보낼 수 있는 1사단 해병들로서는
당연히 응원에 대한 열정이 뿜어져 나왔을 것이다. 
 

 
1사단 해병들의 열정적인 포항 응원.


나와 오해병은 스틸야드가 행여나 닫혀 있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에 경기장까지 뛰어갔다.
이 때는 아직 시즌이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장 개방을 하지 않는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해병의 고향을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우리에게 행운이 따랐다.
내부 공사를 위해 경기장을 개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관광 목적이 아니라 공사를 위해 작업 관계자만 입장이 가능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하시는 한 아저씨께 들어가봐도 되냐고 여쭈었더니,
얼른 찍고 나오라고 하셨다.ㅎㅎ
우린 신이 나서 경기장으로 들어가 한국 축구의 성지인 스틸야드 잔디를 마음껏 만지고 감상했다.


공사중이었던 스틸야드.

스틸야드를 배경으로 오해병과 한 컷.ㅎ

한국 축구의 성지 스틸야드의 잔디.
내 지갑에 조금 담아왔다.ㅎㅎ

나는 황선홍과 홍명보를 비롯한 수많은 포항의 레전드 선수들이 뛰었던 피치에 왔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잔디를 지갑에 조금 담아왔다.ㅎㅎ
포항팬 분들.. 이해해주세요..^^;;ㅎㅎ

이제 스틸야드에서 나와 부대 근처로 차를 몰았다.
오늘 내가 가장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ㅎ
바로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심중위님을 1년 반만에 만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대위로 진급한 뒤, 교육훈련단에서 근무하고 계셨고,
6여단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심중위님을 1사단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심중위님께 우렁차게 경례했다.

"필 승!!!"

심중위님과 우리는 헤어졌던 형제를 다시 만난듯이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 계속 직함을 부르는 우리에게 심중위님은 편하게 하라고 하셨다.

"민간인들이 왜이래~ㅋㅋ 형이라고 불러~ㅎ"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입니다~ㅋㅋ"

심중위님은 소주 한 잔 하면서 편하게 얘기하자며
구룡포가 훤히 내다보이는 멋진 횟집으로 우릴 데려가셨다.

"너무 무리하시는거 아닙니까?ㅎㅎ"

"맨날 와라~ 맨날 사줄께.ㅎㅎ"

이제 상관과 부하가 아닌 형님과 동생으로 다시 만난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함께 치킨을 먹었던 이야기,
근무하면서 서로 서운했을 때 이야기,
애인과 기념일날 선물이라며 휴대폰으로 포토메일을 보내게 해 준 일 등,
즐거웠던 일도 서운했던 일도 모두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추억이었다.
과메기를 맛있게 먹던 내게 더 먹으라며 음식을 손수 놔주시던 심중위님은
더이상 엄한 상관이 아니라 친형처럼 자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전역해서도 해병대를 위해 일하는 우리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본격적으로 해병대 전사적지 여행을 떠나기 전,
상관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으니 기분도 좋고 용기도 났다.

사진만 봐도 군침이 도는 회와 과메기.ㅎㅎ
심중위님과 함께.ㅎㅎ(지금은 심대위님입니다.ㅎ)

한참을 웃고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여행기 작성하고 경과보고 하겠습니다!! 필 승!ㅎㅎ"

예전보다 더 가까워진 심중위님과 우리는 장난도 치면서 헤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병대 전사적지를 둘러볼 것이다.
해병대가 창설된 진해 덕산비행장부터 6.25 때 해병대가 활약을 펼친 곳 등,
지금은 비록 산과 들만 남아 있지만, 선배님들의 혼은 사라지지 않은 그 곳..
그 역사적 장소에 가기 전에 나를 해병으로 키워준 고향, 포항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았다.
앞으로의 여행.
선임들의 자취를 200% 느끼고 전달하는 해병이 될 것이다.
3년 전 이 곳 서문을 나와 배치받은 실무지로 떠날 때의 각오처럼
바다든 산이든 다 헤엄치고 넘어서 임무를 완수하리라 다짐했다.
해병답게.. 악기있게..

악!!!!!!!!!!!!!!!!!!ㅋㅋㅋ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우리는 무적관을 나와 '지금 공수교육이 진행중이다.'라는 담당관님의 말씀을 듣고,
한걸음에 교육장으로 달려갔다.
나와 오해병은 백령도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공수교육은 커녕 낙하산도 구경할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해병공수.
백령해병에게는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교육훈련이다.
그리고 공수훈련은 장비, 항공기 지원 등의 특성상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교육훈련이 아니다.
공정대대에 배속받거나 운이 정말 좋아야 받을 수 있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교육훈련이다.
나와 오해병은 한참 기대감에 부풀었다.

우리는 공수교육대에 도착해서 먼저 교육대 담당관님들께 인사를 드리러 사무실로 갔다.

"반갑습니다. 공수교육대장입니다.^^"

아버지 연배이신 담당관님들께서 존댓말을 써주시면서까지 우리를 반겨주셨다.
말씀을 낮춰달라는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신 공수교육대장님은
'커피 한잔 하겠나?ㅎ'고 하시며 손수 커피를 타 주셨다.
담당관님들은 교육대에 온 그 어떤 손님들보다도 우리를 반겨주시는 것 같았다.
나중에 말씀을 듣고 보니,
전역해서 다시 이렇게 부대를 찾는 해병들을 보면 마음이 엄청 뿌듯해진다고 하셨다.
그것은 아마도 해병대가 인간개조의 용광로로써,
이 곳을 거쳐 나간 해병들이 멋진 젊은이가 되어 다시 찾아온 걸 보면
스승의 보람을 느끼는 것과 같으리라..
아닌가?
요즘 후임들이 기합이 빠져서 우리 같은 예비역을 보면 옛날이 그리워져서 그러신건가?ㅋㅋ
창밖을 보니, 그럴리 없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우리보다 훨씬 늠름한 후배들이 열심히 공수훈련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휘장에 대해 설명해주신 공수교육대 담당관님.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아까부터 눈을 뗄 수 없었던 담당관님들의 공수휘장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황금색 날개의 공수휘장은 그냥 날개만 있어도 짜세나는데,
(해병들은 멋지다는 말을 짜세난다고 표현합니다.ㅎㅎ)
담당관님들의 휘장에는 월계관, 금별, 은별 등의 화려한 장식이 더 수놓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담당관님은 모든 해병공수휘장이 들어 있는 박스를 꺼내서 보여주시며,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밀리터리 매니아인 내게 보물창고와 같은 공수휘장 박스

낙하산 정비 휘장

공수교육을 이수하면 처음 받는 휘장

강하횟수가 늘어날수록 생기는 별

영광의 월계관

무려 200회 이상의 강하를 하신 담당관님의 휘장

공수교육대장님의 휘장

담당관님의 명쾌한 설명을 들으니 각 공수휘장의 차이를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가지 궁금한 것이 남아 있었다.
공수교육대장님은 분명히 공수 강하를 제일 많이 하신 분일텐데,
휘장에 은색 별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공수교육대장님께서는 육군 특전사와 교류훈련할 때의 사진, 휘장 등도 함께 보여주시며,
엄청 많은 강하를 거치고 나면 다시 이 휘장을 단다고 하셨다.
나는 문득 현역으로 근무할 때 만났던 운전병 선임이 한 말이 생각났다.
그 선임은 자동차 매니아였는데, 나중에 전역하면 자동차 튜닝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선임이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야..' 
아무리 튜닝을 하고 개조를 해도 결국 순정 부품이 최고라는 뜻이었다.
위의 사진처럼 전투복 위의 색이 바랜 순정 공수휘장을 보니,
공수교육대장님의 오랜 근무경력이 느껴지는 듯 했다.

담당관님들께는 별 것 아닌 그 휘장에 대해
선망의 눈길로 계속 질문을 하는 내가 기특하셨는지
정복에 패용하는 금속공수휘장을 3개나 선물로 주셨다.
아싸~!!!  이게 왠 횡재~~!!ㅋㅋㅋ
현역으로 근무할 때도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배우려들면 선임들이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이곳에서도 호기심 덕분에 떡 하나 더 받게 되어 기분이 엄청 좋았다.ㅎㅎ

우리는 이제 담당관님께 인사를 드리고 사무실에서 나와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훈련병들이 아닌 현역 실무병들이 정기차수 공수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연예계에서도 가장 씩씩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병, 이정 상병도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이서 연예인을 보는게 신기했던 나는 다가가서 말을 걸고 싶었지만,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훈련에 임하는 이정 해병을 보니 방해할 수 없었다.

공수교육훈련장의 전경

'윌리를 찾아서'가 아닌 '이정을 찾아서'
모두가 늠름해서 누가 이정해병인지 분간이 안간다.


훈련장을 둘러보다가 우리를 안내해 줄 공수교육 조교를 만났다.
전역이 40일 남았다는 변해병은 공수교육대의 자부심으로 끝까지 교육훈련에 매진한다고 했다.
오~~ 진짜?ㅋㅋ
그래도 고참인데 쉬고 싶지 않냐는 나의 집요한 질문에 베시시 웃어보이긴 했지만,
변해병은 앞으로 다시 오지 못할 곳이므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후배의 얼굴에서 진심이 느껴져 뿌듯했다.

나는 얼굴도 잘생긴 변해병에게 공수교육을 몇 번이나 받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는 8번 받았다고 했다..
완전 부럽다...ㅎ
나는 변해병이 멋지게 달고 있을 공수휘장이 부러워서 고어텍스를 벋고 한번 보여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보여드려도 되는지 되묻는 것이었다.
아놔...ㅋㅋ 부럽긴 하다만 여기서 보여주지도 못할 정도냐??ㅎㅎ
왜 여기서 안되냐고 변해병에게 묻자,
그는 교육생들 앞이라 진지한 모습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햇다.
그 말을 듣고 변해병이 더더욱 멋져 보였다.
역시 해병공수의 조교다웠다.

멋진 공수조교 변해병

공수교육에 관한 변해병의 설명을 들었다.

그 와중에도 열심히 훈련받던 공수교육생들

늠름한 변해병과 함께.
변해병이 입고 있는 상의는 공수조교들의 단체복.

변해병의 휘장


변해병의 공수 휘장에 별이 있는 이유는
공수 조교들만 특별 허락에 의해 8번 이상 강하하면 별을 달 수 있다고 했다.
후배 해병들을 카리스마 있게 교육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 같았다.
그리고 닳고 헤진 휘장을 보자,
그간 훈련에 매진하며 고생했을 변해병의 모습이 떠올라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그토록 받고 싶었던 공수교육을 전역해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비록 인연이 닿지 않아 공수휘장을 달 수 없었지만,
이제 정기 강하를 마치고 멋지게 금빛 날개 휘장을 달고 다닐 저 후배들을 떠올리니
그들의 남은 군생활마저도 부러워졌다.
그런 부러움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인 유격 교육장으로 향했다.

친절하게 곳곳을 소개해주신 담당관님.
함께 유격장으로 진입하는 중.


유격장은 부대 밖에 있어서 담당관님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니 해병혼 고지도 보이고, 훈련병 때 행군했던 눈에 익은 길도 나왔다.
나는 행군하던 때를 떠올리며 '조금 걸리겠지.'라는 생각에
모자를 벗고 경치를 감상하던 것도 잠시,
차는 금방 유격장에 도착했다.
아니, 이렇게 거리가 짧았었나?
이렇게 짧은 거리를 걸으면서 내가 그렇게 헥헥거렸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가 유격장 정문을 통과하자 멋진 암벽이 나타났다.
훈련병 시절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암벽은 여전히 멋진 자태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여전히 멋진 유격장

역시 첫번째 덕목은 도전!!

유격대 병사로 가는 길

주차장 안쪽으로 가면서 옛 추억들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만드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격PT로 지친 몸에 없던 힘이 불쑥 솟아나게 만들어주던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문구의 간판.
동기들과 허겁지겁 점심을 먹던 교육장.
그리고 주차장 가는 길 끝에 있는 유격대 병사.
야간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유격장에서의 첫날 밤,
우리는 서치라이트 불빛 아래서 교관님의 마무리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보급품을 싣고 온 선임병이 편지를 한아름 들고 왔고,
교관님은 호명하는 사람은 나와서 편지를 받고 들어가라고 하셨다.
이 유격장까지 편지를 가져와 주었던 그 실무병 선임이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힘든 야간 과업을 끝마치고 돌아와 희미한 주황빛 서치라이트 아래에 서 있으면,
왠지 집 앞 주황색 가로등 아래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깥 생각이 더 많이 나던 그날 밤,
가족으로부터, 애인으로부터 온 편지를 몇 번씩이나 읽다가 전투복 속에 품고 잤던 기억이 났다.

그런 회상도 잠시, 곧 호랑이 유격교육대장님께서 나오셨다.
필!!!씅!!!!
나는 현역같은 목소리로 힘차게 경례했다.
유격교육대장님도 공수교육대의 담당관님들처럼 우리를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다.
 
유격대장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윤해병

유격교육대장님께서는 해병대 블로그 일 때문에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해 두신 것 같았다.
유격장의 각 시설물 점검은 물론, 각 훈련장마다 조교들이 보여줄 시범까지 준비해 놓으셨다.
아마 해외 외신 기자들이 모두 와서 취재해도 무리없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나는 해병대 여행기를 쓰는 것이므로 이야기를 나눌 한 명의 조교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드리자,
두 명의 조교를 붙여주시며 '120% 지원해드려!!'라고 말씀하셨다.
외모도 호탕하신데 성격도 역시 해병답게 화끈하셨다.ㅎㅎ

유격PT로 지친 몸에 없던 힘도 불어넣게 하는 문구

든든한 후배 조교들과 함께 유격장으로


유격교육대장님으로부터 120% 지원을 명 받은 후배 조교들은
당장이라도 막타워로 뛰어올라가 헬기레펠을 시범보일 기세였다.ㅎ
어떤 시범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몰라 긴장해하던 후배들에게
여행기를 쓰는 거니까 편하게 나랑 얘기하자고 하니, 그제서야 조금 긴장을 풀었다.
후배 조교들의 탄탄한 체격과 번뜩이는 눈빛을 보니,
훈련병 시절에 만났던 유격조교 선임들이 생각났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도하를 지시하던 선임들은
비속어 하나 사용하지 않고도 훈련병들을 바짝 얼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 날 만난 지해병, 김해병을 보니 예전의 그 멋진 조교 선임들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새로 생긴 거대한 막타워

유격장 시설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윤해병


나는 왠지 낯설게 느껴지던 저 커다란 막타워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거 원래 있던거야?"
그랬더니 지해병은 내가 실무로 가고 얼마 안되서 새로 생긴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훌륭한 막타워에서 훈련받을 후배들을 생각하니 조금 부러워졌다.
사실 이런 훈련을 부러워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해병 가족분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건빵 받는 것보다 훈련받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해병대라는 것을..ㅎ
암벽레펠 훈련장에서 바라본 헬기레펠 훈련장

유격장 전경을 쭉 둘러보니, 한군데 더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유격훈련 중 가장 힘들다는 외줄 도하를 하기 위해
비교적 짧은 외줄의 연습용 훈련장이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지해병은 그 연습용 외줄이 앞산으로 옮겨갔다고 했다.
나는 후배 조교들과 외줄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백령도에서 받던 유격훈련이 생각났다.
해병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백령도 해안 유격장.
경치도 끝내주지만, 외줄의 길이 또한 끝내주게 길었다. 무려 98미터..ㅎ
그 외줄 훈련을 하던 것이 생각나 오기어린 마음으로 지해병에게 농담을 걸었다.

"이봐 지해병~ 백령도 외줄 알아?ㅎ"
"예! 알고 있습니다."
"나 그거 하루에 두번도 당겼다니까~하하하... 나 대단하지?ㅋㅋ"
"예! 대단합니다."

그러고 나서 잠시후 앞산 외줄 훈련장에 다 와갈 무렵 지해병이 이렇게 말했다.

"윤동빈 해병님, 백령도 선임의 외줄 시범 한번 보여주십시오.ㅎ"

응..????
나는 순간 식은땀이 등줄기에 흐르며, 아까 농담을 잘못 꺼냈다는 걸 느꼈다.;;ㅎㅎ
괜히 유격 조교 앞에서 똥폼을 잡았나보다..ㅎ
아까 한 말도 있고, 똘망똘망하게 나를 쳐다보는 후임들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긴 외줄로 제대로 시범을 보여달라는 지해병의 권유를 무시하고,
짧은 시범용 외줄로 타협을 보긴 했지만,
지금은 왠지 이것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ㅎ

짧은 시범용 외줄. 유격장의 연병장에 있던 것이 앞산으로 옮겨져 와 있었다.

해병 유격 훈련은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해야 한다면서
줄을 흔들 준비를 하는 지해병.ㅎㅎ

결국 1m도 전진하지 못하고 통닭.ㅎㅎㅎ

긴 외줄에서 시범을 보이는 지해병.
역시 멋진 우리 후배.

그렇게 조교 후배들과 농담도 하고 장난도 걸며 친해졌지만,
이제 곧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서울에서 급히 내려오느라 후배들을 위해 작은 쵸코바 하나 사오지 못한 것이 계속 아쉬웠다.
전투체육하고 씻을 시간인데도 시간을 내서 견학을 도와준 후배들이 고맙다.
우리는 떠나기 전 아쉬운 마음에 셋이서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후배들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제 유격장을 떠나 길등재,오어사,
그리고 1사단 해병의 명소인 스틸야드 축구경기장까지 둘러보려면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구름 한점 없이 푸른 하늘 아래 유격장.
이곳까지 둘러보니, 앞으로 해병대 전사적지를 탐방 할 만한 해병정신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이번에는 건물수색 훈련이다. 미 해병들이 먼저 시범을 보인 다음 우리 차례. 모두가 사주경계 중인 가운데 분대장이 대문에 폭탄을 설치한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데 당당히 대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쾅!’실제 폭탄이 터진 것처럼 문을 박차고 돌입! 순서대로 신속하게 이동한다.



드디어 나도 선배 해병들을 따라 실내로 진입한다. 전광석화와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정말 빠르다.



가장 후미의 수색대원은 적 공격에 대비해 중간 중간 몸을 돌려 후방을 경계한다.



실내 돌입 전 잠시 대형을 점검하고 숨을 고른다. 그리고 선두의 신호에 따라 신속하게 진입!



순식간에 선배 해병들의 모습이 실내로 사라진다. 이번에는 내가 후미다. 선배 해병들과의 거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린다.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실내수색을 시작! 가장 마지막으로 실내에 돌입한 나는 뒤로 돌아 후방을 경계한다. 적의 공격을 받고 독안에 든 쥐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미 해병들과 2인 1조로 실내 수색을 시작!



거침없이 문을 박차고 실내를 확인한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미 해병들도 민첩하다.



실내를 수색하고 가상을 적을 소탕했다. 이제 문제는 빠른 속도로 퇴출하는 것.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적의 공격에 대비하며 출구의 안전을 확인한다.



- 고고고!

대열을 이뤄 건물 밖으로 빠르게 퇴출! 건물소탕작전의 핵심은 적이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건물에 진입하고 다시 건물과 건물 사이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해병대원들이 안전하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후방을 경계한다. 다른 해병대원들과 보조를 맞추면서도 후방을 경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남다른 팀워크를 자랑하는 우리 수색대원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 우리의 전우 미 해병들이, 오늘 이곳에서 자신들의 시가전 경험을 우리에게 전수해 준다고 한다.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하자. 모두 자신 있지?

- 악!

해병이 되고 로드리게즈 훈련장에 처음 온 이해병.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다. 하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해병 해병특수수색대원이다! 힘찬 함성과 함께 드디어 훈련 시작!



- 연막탄 잘 챙기고 각자 군장 점검 철저히 하자!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연막탄이 지급됐다. 소대장님 말씀에 따라 연막탄을 군장에 결합하고 다시 한 번 잘 살펴본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이 훈련이라고 해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교관 역할을 맡은 미 해병이 내 군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다. 뭐가 잘못됐나? 실수한건 아닐까? 걱정도 잠시, 알고 보니 훈련 전 안전 확인 절차란다. 역시 미 해병대와 우리 해병대는 피를 나눈 형제다.


- 모두 정신 바짝 차리고 사주경계 철저히 하도록!

드디어 시가전 훈련이다. 넓은 시가전 훈련장을 소대장님의 지시에 따라 빠르게 이동한다. 훈련장의 느낌이 꼭 입대하기 전 우리 동네 같다.



드디어 적이 매복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위험지역에 들어왔다. 이제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직 손짓과 눈 빛 만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이동도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움직인다.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른다.



교차로에 다다르자 선두의 첨병이 정지 수신호를 보낸다. 아무래도 모퉁이 너머에 적이 있을 것 같다. 그대로 교차로를 통과했다가는 적의 사격에 벌집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피던 미 해병이 손을 살짝 들어 신호를 준다. 연막탄 투척 신호다.



안전핀을 뽑고 적의 시야를 가리기 위해 힘차게 연막탄 투척!



발화된 연막탄에서 연기가 충분히 퍼질 때까지 5~8초 정도 기다려야 한다. 왜 이렇게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지. 적이 오히려 연막탄 때문에 우리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하면 어떻게 하지? 괜히 걱정이 앞선다.



이동 신호다! 사주경계를 하며 한명씩 교대로 교차로를 통과한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숨이 턱에 차도록 힘차게 달린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을 것만 같던 연막이 점점 옅어진다. 죽어라 달려보지만 이미 주변사물이 확실히 구분될 정도로 연막이 옅어졌다. 교차로 너머의 전우들은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 걸까?



드디어 교차로 건너편에 도착. 하지만 숨 돌릴 틈이 없다. 뒤따라오는 전우를 위해 사주경계. 그리고 나 역시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거친 숨을 고르며 다시 사주경계. 교관 역할을 자처한 미 해병들이 우리의 미비점과 실수를 하나씩 지적하며 바로잡아 준다. 이날 우리는 시가전 훈련장을 계속 이동하며 수십 개의 연막탄을 사용했다. 이제 좀 감이 잡힌다. 하지만 아직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 다음 편에 계속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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