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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마~린 생생 리포트!/해병대 이모저모

해병 할머니와 해병들의 사랑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27.

 

 

해병대가 대청도에 위치하기 시작한 1951년부터 지금까지 60여년 동안 대청도 해병들과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받으며

'해병 할머니'라는 별명과 함께 한 평생을 보낸 이가 있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선비(향년 87세, '12. 11. 22(목) 별세) 할머니로,

대청도 뿐 아니라 백령도에 근무한 적이 있는 해병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수많은

해병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왔는데요.

 

1926년생인 이선비 할머니는 5살의 나이에 황해도 해주에서 월남한 후 14살 때 대청도로 시집와 줄곧

그곳에서 해병들과 함께 살아 왔습니다

 

낮에는 엿장수와 고물장수를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하며 어렵게 생활해 오던 할머니는

어느 해병의 군복을 바느질해 준 것이 해병대와의 첫 인연이 되었죠.

그때부터 할머니는 보이는 해병들 마다 손수 밥을 지어 먹였고, 찢어진 군복을 수선해 주었답니다.

심지어 전 부대원에게 똑같은 속옷을 만들어 주기도 했죠.

 

 

 

해병 할머니가 대청도 해변의 작은 마을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갈 당시에는

손자같은 장병들의 편지를 대신 부쳐주거나 고민을 들어주었답니다.

또한 부대 지휘관들은 실무 적응이 미숙한 해병들을 할머니에게 보내 상담을 받도록 하였지요.

이렇게 해병대 장병들은 자연스럽게 이선비 할머니를 "해병 할머니"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팔순이 넘어 기력이 없을 때에는 훈련이나 외출 등으로 집앞을 지나가는 해병들이 눈에 보이면 버선발로 나와,

과자 하나라도 꼭 쥐어주며 우리 해병들을 격려하고 다독거려 주었답니다

 

할머니의 해병대 장병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극지했던지 

할머니가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가 됐을 때에는 육지에 사는 아들이 함께 살 것을 간곡히 원했지만

할머니는 "해병대 장병들과 떨어져서는 하루도 못살 것 같다"라며 아들의 권유를 뿌리치기도 했답니다.

 

 

 

해병대 장병들은 이와 같은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할머니가 하기 힘든 도배나 페인트칠 등을 통해

할머니를 도왔고 '해병 할머니집'이라는 간판을 직접 만들어 달아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부대장으로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전출이나 전역으로 대청도를 떠나게 되면

부대에서 신고를 마친 뒤에는 꼭 '해병 할머니'집을 방문해 감사의 마음을 드렸답니다.

 

이처럼 해병들과 할머니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지내던 중,

할머니가 고령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지자 장병들은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하루에 한 번씩

할머니를 찾아뵙고 안부를 확인하고 집안 청소와 땔감마련 등 아들과 손자 노릇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해병대 장병들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노환이 깊어져 2010년부터는

인천의 한 요양원에서 지내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해병들을 두고 지난 11월 22일 작고하셨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해병대 장병들은 해병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눈물 지었으며,

"내가 죽거든 손자 같은 해병들의 손에 의해 묻히고 싶다"라는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평생을 함께해 온 해병대원들의 배웅속에 안식의 잠에 들었습니다.

 

백령도 6여단에서 정보참모, 작전참모, 여단장 직책을 수행하며 해병 할머니와 인연이 깊었던

이호연 해병대사령관께서는 할머니의 별세 소식에 가슴 아파하며

"해병 할머니가 베풀어주신 사랑은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 의해서 성장하고 전파되어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며,

베품과 섬김의 성숙된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라며 애틋한 마음을 밝혔습니다.

 

 

"재산목록 1호는 해병대 장병들과 찍은 사진이다"

 

"남은 여생도 해병과 함께하는 영원한 해병이 되겠다"

 

해병들에게 늘 웃음지어 주셨던 '해병 할머니'는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며,

해병대는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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