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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주년3

"무적해병"의 시작! 도솔산지구 전투를 기념하며.. 1951년 6월 강원도 양구. 분지지형이 마치 화채그릇을 놓아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Punch Bowl"이라고 미군들에게 불리는 이 곳에서 해병대의 신화가 또 하나 써졌습니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61년이 지났는데, 화채그릇과 비슷한 양구분지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군요. 도솔산은 양구를 둘러싸고 있는 고지 중 하나로, 사진에서 처럼 적정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곳이었지만 이미 북한군 최정예로 불리던 12사단이 수많은 병력과 진지를 구축하고 난공불락을 장담하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탈환해야하는 고지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국군과 연합군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죠. 미 해병 5연대가 도솔산을 향해 돌격했다가 숱한 피해만 보고 물러나자, 1951년 6월 4일. 도솔산 공격의 임무를 우리 해병대.. 2012. 6. 18.
해병대 상륙전력은 모두 인천으로 집결하라! 낙동강 전선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경각에 달려있던 대한민국의 목숨을 구해낸 세기의 작전. 인천상륙작전!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는 논리로 인천상륙작전은 감행되었고, 1/5,000의 확률을 뚫고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50년 9월 15일 오전 6시에 시작한 상륙작전은 작전개시 두시간 만에 월미도 점령을 끝냈고, 5일만인 1950년 9월 20일 한국 해병대 2개대대와 미 해병대 1개 사단이 한강을 건너 서울 수복에 성공함으로써 종료되었는데요, 인천에서 내려오는 한미 연합 해병전력과 낙동강에서 대대적인 반격을 펼치며 올라오는 UN연합군 전력이 위아래로 인민군을 압박하며 6.25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역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한 세기의 『인천상륙작전이』61주년을 맞았습니다. 선배 해병들.. 2011. 9. 16.
4월 15일은 누구의 61번째 생일일까? 혹시 학창시절의 국사시간에 여수·순천사건 사건에 대해 배운거 기억하시나요? 저는 가물가물...한데요 ^^...이게 왜 중요하냐! 해병대가 오늘로부터 61년 전 1949년 4월 15일 창설될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이 이 여순반란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시작하자마자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대해 설명하면 바로 뒤로가기를 클릭하실걸 알기에! 간략하게만 설명해드릴게요^^ 대한민국 군의 모체인 조선경비대(육군)과 해안경비대(해군)이 출범한 뒤, 1948년 10월 19일에 조선경비대의 일부 좌익세력들이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저지하려고 여수와 순천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여수와 순천 지역이 바닷가였던지라 해군이 진압에 나섰는데요. 마땅히 배에서 내려 싸울 군인이 없다는걸 알게 되자 해군 임시함대의 함장인.. 2010.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