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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마~린 생생 리포트!/해병대 이모저모

월남파병...그 현장으로 되돌아가다!

by 운영자 2010. 10. 1.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을 기억하시나요?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는 전쟁의 아픔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창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우리 땅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군인들은 이제 민주주의 수호와 국위선양을 위해 다른 나라로 가서 전쟁을 치루게 됐는데요. 바로 베트남이었습니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10여년 전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6.25 전쟁과 같은 이념적 대립의 양상을 띄었고 베트남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했던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우방국들에게 파병요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월남파병을 위해 '청룡부대'라는 별칭이 붙은 해병 제2여단의 결단식이 거행되는 모습입니다.



결단식에서는 당시 해병대의 항공기들이 비행하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는데요.. 다시 대한민국 해병대의 항공기와 헬기가 하늘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기대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의 청룡부대장이었던 이봉출 준장에게 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1965년 10월 3일 해병 제 2여단은 청룡부대라는 이름을 갖고 베트남을 향한 여정길에 올랐습니다. 해병대의 파병은 국익에 많은 도움을 줬는데요. 당시 우리나라가 경재개발에 착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 병력의 일부가 베트남 전쟁에 투입될 가능성을 예방하였고, 미군을 대상으로 납품하는 군수물자 등의 수요로 엄청난 경제적 수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원정길에 오른 선상의 대원들. 항상 전투에 임하는, 독하고 매서운 눈빛의 모습의 사진으로 밖에 접하지 못해 머릿속엔 항상 무서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이런 사진을 보니 역시 그들도 웃고 떠들며 재밌게 놀 줄도 아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는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베트남에 도착하여 신고를 하고 있는 해병대의 모습입니다. 해병대만의 고유무늬인 얼룩무늬 전투복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해병대의 청룡부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첫번째 전투병력 파견부대였습니다. 한국은 이미 비둘기부대라는 비전투 지원병력을 파견한 상태였지만 전쟁이 확대됨에 따라 전투병력 파병을 고려하게 되었고, 바다를 건너 어떤 지역으로든 투입되는 원정부대의 성격이 강한 해병대가 해외 파병에 적합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삼림과 늪지대가 많은 베트남의 전장 환경에는 상당 수준의 상륙전 능력과 6.25 시절 풍부한 비정규전 경험을 갖춘 해병대가 적격이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가한 해병 항공대 정찰기의 모습입니다. 당시 해병대는 공, 지, 해 모든 곳에서 맹활약을 펼쳐 해병들에게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순애", "보고싶다", "울산 큰 애기", "정조준금지구역" ...
해병의 철모에서 아들과 남자친구를 전장으로 보내는 어머니와 애인의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해병대는 이 베트남 전쟁에서 무수히 많은 승리로 전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험난한 전쟁이었던만큼 희생자도 많았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운 용감했던 순국선열들은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할 것 입니다.  



해병대 61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살신성인'의 가장 대표적인 분이 바로 고 이인호 소령입니다. 베트남에서의 해풍작전 중 적이 은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에 이인호 소령이 대원 4명으로 구성된 수색조를 직접 인솔하던 중 갑장지 동굴 속에서 투척한 수류탄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이소령은 즉시 수류탄을 집어들고서는 적군 바향으로 던져(베트콩 5명 사망) 위기를 모면하는 듯했지만, 뒤이어 또 하나의 수류탄이 던져졌습니다. 이번에서 다시 집어서 던질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결국 이소령은 자신을 따르던 대원들을 피신시킨 후 수류탄 위로 몸을 던져 폭사하고 말았습니다.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것인데요. 지금까지도 고 이인호 소령의 희생정신은 해병대와 국군의 귀감으로 남아 있습니다.



해병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 중의 하나였던 '짜빈동 전투'에서 11중대가 받은 대통령 표창입니다. 이 전투에서 해병대 11중대는 중대보다 10배가 넘는 2개 연대의 병력을 기습을 막아내어 몰살시켰고,  이 전투 후에는 미군조차 국군에 찬사를 보내면서 우리 해병대의 중대기지 전술을 자신들의 전술에 도입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할 정도였습니다. 오늘날 '귀신 잡는 해병, 무적해병'과 더불어 자주 인용되는 표어인 '신화를 남긴 해병대'는 바로 짜빈동 전투에서 붙여진 것입니다!


해병대는 전장에서의 용맹스러움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의 자상함으로도 이목을 끌었습니다. 구호식량과 구호의류를 제공하고 무료 진료도 제공하며 민사심리전에서도 성공을 거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아까는 다들 철모를 쓰고 있어서 얼룩무늬 전투복으로만 그들의 강한 포스를 느꼈는데 이제보니 전투복 때문만이 아니였군요. 선배 해병들의 '오도상륙돌격컷'은 정말 악기차고 강인함을 풍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아이를 앉고 있는 모습이 마음은 따뜻한 국민의 힘, 해병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네요. 
 


전쟁이 끝난 후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신화를 남긴 해병"이라는 수식어를 남긴 해병대는 국위선양을 하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아빠의 품에 안기는 아기. 낯설기만 하겠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그렇지 않겠죠. 다시 볼 수 없었을 수도 있었는데 가족을 위해 기필코 살아오겠다고 다짐하고 무사히 돌아온 해병, 그리고 아버지. 우리 모두의 아버지입니다.  



청룡부대의 파월군가 '청룡은 간다'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제일 좋아하는 해병대 군가이기도 하고요~ 당시 청룡부대의 포부를 잘 표현해주는 멋진 군가이죠?


10월 3일(일요일)은 해병대가 월남으로 파병간 지 45년째가 되는 날입니다... 비록 시간이 지나 우리 해병대가 베트남에서 대한민국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던 베트남을 도와주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 활약들이 잊혀져 가고 있지만 이러한 선배 해병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이번 주 토요일(10월 2일) 부산항 제4부두에서 월남파월 청룡부대 출정기념식이 열립니다. 만약에 부산에서 가까이 살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방문하셔서 해병대의 명성을 드높이게 했던 역사 속의 현장을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으실 것 같아요!

행사명 : 월남파월 청룡부대 출정기념행사 및 추모제
일   시 : '10. 10. 2.(토) 14:00 ~ 16:00
주   관 : 해병대전우회 중앙회
장   소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부산항 제4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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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목요일에 설명드렸듯이 토요일(10월 2일)에 부산항 제4부두에서 45년만에 베트남 파병 기념식을 최초로 개최했었습니다! 그 생생한 현장사진을 전달합니다 :)



베트남 파병을 위해 함정에 탑승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습니다. 해병대 장병들은 '청룡은 간다'라는 해병대 군가를 힘차게 부르며 파월 당시 출항 모습을 다시 보여주며 그날의 영광을 되새겼습니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베트남전 당시 청룡부대의 활약을 담은 역사사진과 최근의 해병대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전도 개최되었습니다.



멋진 의장대 시범도 빼놓을 수 없었겠죠? ^^;



LST(상륙함)을 타며 출항 모습을 재연하는 우리 해병대 장병들..앞으로도 해병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해병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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