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야드.

킥 오프 직전 포항의 한 선수가 관중석의 해병대 장병들에게 달려가더니 넙죽 거수경례를 한다.

장내 아나운서를 통해 해병대 출신이라고 소개된 이 선수는 포항 스틸러스의 중앙 수비수 김원일.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후보 선수에 불과 했던 이 선수는 7월 무렵부터 포항의 주전 자리를 꿰차기 시작하더니 해병대 출신 축구선수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에도 그의 해병대 사랑은 언론을 통해 자주 소개 되었다. 11월 23일 북한의 포격도발이 있자마자 숙소에 예비군 군복을 챙겨온 일화는 유명하다.
정말 화가 났습니다. 사령관님의 눈물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무 잘못 없는 후임들의 희생이 정말 화가 났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도 화가 났고 부끄러웠기 때문에 정말 유사시에 예비군을 소집한다면 바로 가기 위해 군복을 숙소에 챙겨놨습니다.”

엘리트 중심의 한국 스포츠계에서 운동선수가 군대에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운동 인생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사실이다. 상무 팀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많은 남자 운동선수를 다 소화할 수는 없는 법. 병역의 의무는 신성하지만, 많은 운동 선수들이 눈물을 머금고 군에 입대하여 운동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경우도 분명 많다.

김원일 선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숭실대라는 제법 잘 나가는 대학 팀의 멤버였지만 어느 날 덜컥 해병대 입대를 선언한다. 1037기로 입대한 그는 포항 1사단 72대대 7중대 3소대 IBS 부대에서 근무했다.



“제 포지션에 잘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군대를 하루이틀 미루면서 경쟁을 하기엔 제 미래가 너무 불확실했어요. 그래서 군대문제부터 해결하고 다시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죠.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전역 후 다시 축구화를 신어 실업팀 입단을 준비하겠다는 생각. 하지만 막상 군대에 가니 그 꿈은 정말 ‘꿈’ 같은 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고된 훈련과 바쁜 일상에 축구는 그의 인생에서 멀어져만 가는 듯싶었다.

어느 새 그의 장래희망은 제대하고 일반 직장에 취직하는, 운동선수와는 거리가 먼 꿈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입대할 때는 다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군 생활을 하면서 축구 선수의 꿈에서 멀어져간다고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항상 수양록에 ‘나의 꿈은 프로축구선수’라 적으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항에 위치한 해병대 제1사단은 포항스틸러스의 경기를 단체관람하곤 한다. 한 때 축구 선수였던 그도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채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하곤 했다. 자신이 선택해 온 해병대였지만, 축구에 모든 것을 걸었던 이가 동료들이 뛰는 모습을 관중석에서 보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저의 꿈이 프로축구 선수였기 때문에 스틸야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저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러웠고 또 꿈을 이룬 이들이 정말 대단해보였습니다.”

그의 마음 속 축구선수에 대한 희미한 꿈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다시 싹트기 시작했다.

“휴일에도 항상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또 축구든, 구보든, 행군이나 어떠한 훈련이든 항상 선두에 서서 열심히 했습니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얘기가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축구에 열광하는 군대인 만큼, 축구선수 출신인 그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로 꼽는 경기 중 하나는 자대 배치 후 이등병 신분으로 참가했던 첫 경기였다. 선임이 모든 걸 보여주라고 주문하며 축구화를 신겨줬고 김원일은 세 시간 동안 죽어라고 뛰었다. 체육시간에나 축구를 하다 온 해병들과 대학축구선수 출신 해병의 실력차는 상당했을 것이다. 김원일에겐 자신의 축구인생을 모두 건 한 판 승부였다. 온갖 기술과 테크닉을 다해 수비수를 따돌리고, 선임들이 발만 갖다 대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김원일의 군 생활은 ‘폈다’고 한다. 축구를 잘한다고 이쁨을 받은 것은 둘째치고 군 생활 모든 이들의 소망인 휴가 면에서도 그는 분명 덕을 봤다.


사단 체육대회 때 우승해서 14박 15일 휴가를 받은 것은 물론 국방부에서 주최한 군대스리가에서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14박 15일의 포상휴가를 나간다. 군대스리가에서의 그의 활약은 신문 지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예선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그의 맹활약에 힘입어 1사단 팀은 해병대 대회에서 우승하여 계룡대에서 펼쳐진 해군 결승전에 출전한다. 해군 작전사와의 결승시합에서도 3-0 승부를 마무리 짓는 쐐기골을 성공시키는 등 맹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지금은 수비수 이지만 군대스리가에서는 최전방 공격수였습니다. 매 경기에 득점을 했었습니다.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해병대다운 끈끈한 팀워크가 다른 군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정말 좋았습니다.”

군대스리가에서의 활약은 언론을 통해 대학시절 은사였던 윤성효 감독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김원일이 제대 후 다시 숭실대 축구부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군대스리가에서의 활약이 매개체가 됐다. 그렇게 하고 싶던 축구를 제대로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또 다시 그늘이 찾아온다. 부상이 그를 덥친 것.

“군대 전역 후 숭실대에 복귀해서 첫 대회를 뛰다가 내측인대부상을 당해서 2개월 동안 병원에서 재활을 했습니다.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힘들었습니다. 부상당해 경기에 출전 못한다는 것과 1년 안에 나를 보여줘서 취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힘이 들었습니다.”

 

 
어렵게 나간 첫 대회에서 입은 부상.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데 해병대 정신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정말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항상 힘들고 두려울 때는 무엇이 두려우랴! 무적의 사나이! 하고 속으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다시 일어선 김원일 선수. 숭실대에서 축구 선수의 꿈을 계속 키워나가던 그는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크게 기대를 안 해서인지 드래프트 현장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문자 중계를 보고 있었지만 그의 이름은 쉽게 불리지가 않았다. 그 때 포항에서 그를 지명했다. 포항 스틸러스 6순위 김원일 지명. 우연인지 운명인지 군 생활을 한 포항에서 또 다시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2010년 그는 그렇게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다. 3년 전 포항 스틸야드 관중석에서 팔각모를 쓴 채 축구를 보던 해병이, 포항 스틸러스의 유니폼을 입은 채 당당히 스틸야드의 잔디를 밟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무렵부터는 주전 자리를 꿰차더니 포항 수비의 핵심전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가 출전하기 시작한 이후 수비불안에 시달리던 팀은 균형을 찾았고 전반기의 부실한 모습을 완전히 벗어내기에 이른다.



“전역 후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그 무서움을 알았고 정말 낮은 곳에서 다시 올라왔기 때문에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주말에도 집에 가지 않고 항상 남아서 운동을 했습니다.”

마치 우연 같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노력이 일궈낸 결과, ‘슈팅라이크베컴’ 이라는 영화보다 더 기막힌 이 성공스토리는 그래서 감동적이다. 스틸야드에 울려 퍼지는 ‘팔각모 사나이’를 들을 때마다 그의 심장도 뜨거워진다.

“그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습니다. 스틸야드에서 팔각모사나이가 힘차게 들려올 때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희팀 선수 및 브라질에서 온 용병들도 해병대를 알고 있습니다. 항상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항상 가슴이 뜨거워지는 스틸야드의 명물이자 자랑입니다.”

그의 목표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포항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는 것. 한 팀에 오래 남는 선수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약속의 땅 포항. 그 인연의 시작은 해병대였다. 자원입대한 해병대에서 그는 축구선수의 꿈을 다시금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정신력을 얻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불가능을 모르는 해병정신을 스스로 보여준 그이기에 해병대 후배들에 대한 애정은 더욱 각별하다.

“2년의 군 생활이 걸림돌이라 생각하면 걸림돌이 될 것이고 디딤돌이라 생각하면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해병대답게 힘든 군 생활을 이겨내고 자부심을 갖고 전역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처럼 운동을 하다가 군에 입대한 후배 운동선수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운동을 하다가 군대에 왔다면 느끼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가족의 소중함에서부터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배우는 것은 정말 많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배우고 포기하지 않고 정말 노력한다면 전역하고도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자신이 축구를 다시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중대 행정관인 이경웅 원사 덕분이라는 말을 꼭 써달라는 그는 해병대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딱 한 줄로 답변했다.

“프라이드. 자부심 있는 군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해병대를 선택했습니다.”


글 : 해병대지 편집팀 / 사진 : IB스포츠 제공

 


 


 
Posted by 날아라마린보이 완소마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2013.06.21 23:33

    대단대단~..
    짱이예용~~

  3. 2013.07.17 17:20

    김원일 선수!! 정말 해병대 출신 인재가 많네요~
    대단합니다

  4. 2013.07.18 00:36

    해병대엔 정말 인재가 많은거같아요
    대단해요정말!!

  5. 2013.10.11 00:10

    김원일 선수 화이팅

  6. 1177 우현이여자친구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3.10.24 00:17

    해병대라 체력과.지구력하나는대단하실듯ㅋㅋㅋ

  7. 2014.01.02 14:04

    아무나 해병이 될수 없는곳 ..
    김원이 선수도 정말 대단 하지요.해병대가
    이래서 유명 한가요 ㅎㅎ

  8. 2014.01.06 13:09 신고

    김원이 선수 많이 들어본 적 있는데 해병대 셨군요 ㅎㅎ

  9. 2014.01.13 03:17 신고

    김원일 선수 화이팅입니다!

  10. 2014.01.14 00:25 신고

    정말 화이팅입니다!
    응원하겠습니다^~^

  11. 2014.01.28 12:20

    축구 좋아하던 우리 꾸나가 생각나네요 ㅎㅎ

  12. 2014.01.31 20:23

    넘멋져용ㅎㅎㅎㅎㅎㅎ화이팅^^*

  13. 2014.02.04 15:46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

  14. 2014.02.04 18:09

    팬이될것같아요! 멋지네요 해병은 역시달라욤!

  15. 2014.02.11 02:07

    오옷 이선수도 해병대출신이군요~!!

  16. 2014.02.16 02:40

    오오 은근히 해병대 출신 유명인이 만은것같네요 ㅎ제가몰라서그렇지..

    • 1181 말랑이 수정/삭제> 댓글주소
      2014.02.16 03:14

      맞아용 저두 남자친구가 해병대가구나서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정말 멋진 연예인들이 해병대출신이더라구요..

  17. 2014.02.23 03:24

    와우.. 예비군소집시 바로달려갈라구 군복을 숙소에나뒀다니요..정말 해병사랑 각별하십니다 ㅎㅎ

  18. 2014.08.04 06:49 신고

    꾸나가 축구를 너무 좋아하다보니 정말 애정이 막 가네요 ㅎㅎㅎ

  19. 2015.01.25 19:23 신고

    저희 해병이도 이런 선배님들의 끈기를 본받아서
    멋진 해병이 되어야 할텐데!
    처음 뵙지만 정말 멋있군요
    김원일 선수 덕분에 조금 더 해병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 2015.02.14 00:46 신고

    저도 축구 참 좋아하는데..ㅎㅎ 저희 군화도저렇게 멋있는 해병이 되길 바라는 바입니당ㅎㅎ

  21. 2015.02.14 04:54 신고

    무적해병@귀신잡는해병!
    그대들이 있어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멋있습니다!ㅎㅎ 모두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