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귀신 잡는 해병대' `신화를 남긴 해병대' 등 해병대와 관련된 표어!

이 중에서도 `신화를 남긴 해병대'라는 표어는 좀 더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신화를 남긴 해병!

 

이는 1967년 2월 15일 아침 베트남의 짜빈동에서 한국해병대 제2여단 제11중대의 전투현장을 둘러본 외신기자들이 붙여준 애칭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번째의 전투병력 해외 파병부대로 기록된 청룡부대는 이 짜빈동전투를 통해 외신들로부터 ‘신화를 남긴 해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한국 해병대의 위용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짜빈동 전투는 해병대 청룡부대 11중대가 1967년 2월 15일 베트남 쾅나이성 손틴군 짜빈동 인근의 고지에서 2개 연대 규모의 월맹 정규군과 3시간여의 사투 끝에  아군 15명이 희생됐으나 적 243명을 사살하며 적을 물리친 우리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부대의 신화 같은 전투사중의 하나입니다.

 

 

그 짜빈동전투의 고귀한 희생과 위대한 승리를 기리는 제51회 짜빈동전투 전승기념 추모식이 2월 13일 서울 국립 현충원 26묘역에서 거행됐습니다. 

 

 

참전용사 및 유가족, 해병대 장병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은 개식사, 전사자에 대한 경례, 헌화 및 분향, 조총, 묵념, 전사자에 대한 경례, 근가제창 순으로 엄숙하게 거행됐습니다.

 

 

 

 

 

 

 

 

 

 

 

 

 

 

 

 

 

 

 

 

 

 

<군가제창 - 청룡은 간다>

 

 

 

 

 

 

 

<짜빈동전투 당시 해병대 청룡연단 11중대  1소대장이었던

신원배 짜빈동전투전우회장이 전사자묘소를 돌아보고 있다.>

 

 

추모식후에는 국립서울현충원 구내식당에서 감사오찬이 있었습니다.

 

 

 

짜빈동전투는 고립된 1개 중대 규모가 연대규모의 적에게 치명타를 가한 제11중대의 쾌거가 외국언론에 의해 “신화를 남긴 해병대”라는 제목으로 보도되며 국위를 선양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적들도 차후 한국군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게 됐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병대가 베트남 짜빈동에서 10배가 넘는 적의 집요한 공격을 육탄으로 격파했던 것처럼 어떠한 적이라도 도발해 온다면 해병대는 언제라도 짜빈동 정신을 발휘해 제2의 신화를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글/사진 임영식 작가>

Posted by 임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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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16 12:09 신고

    짜빈동전투를 읽어본 소감?.............

    해병의 죽음이라는것은 명예로운것이다.....

    전사한 이병.일병들,,, 그리고 졸병분대장......... 상황에 생각을 잠기어본다.... 그리고 고참분대장들과 선임수병들,,,, 전사한 해병들 명예로운 전사다.....

    살아있는 중대원은,,,,,,,,,,, 한울타리안에서 생각하면,,,, 무적해병이다......... 그러나. 유치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해병은 없었을까 ?.....

    내가 월남전을 참전하기위하여 해병대를 자원했는데,,, 하사관임관 18일남기고 해병대철수로 월남은 참전못했지만.....

    김포에 배치받아서... 생활중에 여단에서 무장탈영병이있었는데.... 여단이 총동원한 체포작전을 전개했다/////

    몇칠간 잠도못자고 김포반도를 포위해서 여단병력이 수색작전했는데.... 나의 중대는... 김포하성 근처에 배치되어서... 중대장의 명령을 받아서 분대장들에게 수색작전을 내리는데.....

    중대근처에 넓은 인삼밭이있었는데,,,, 중대장 명령은 월남전참전용사 고참 분대장을 월남참전중대장이 명령을내려서. 인삼밭은 수색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고참하사는 나 씬삥분대장인 나를 바라보면서 중대원들 앞에서... 화를내면서. 졸병하사 내이름을 부르면서. 나보고 수색하라고화를내면서 나를 시켰다..

    나는 중대장앞에서 당황하고 중대장 명령을 불응하는 고참하사를 바라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시키는대로 실탄을 장전하고 인삼밭으로 들어가려는 찰라에...

    고참 단기하사 안하사가... 조하사 나하고 같이 수색하자면서.... 함께 넓은 인삼밭을 양쪽으로 붙어서 수색했는데,,, 이당시에 중대장은 분대장들만 실탄을 보급했다...

    분대둘이서 인삼밭을 수색하면서.... 참말로 소름 기치는순간들이었다...무장탈영병은 개인화기와 실탄 1기수탄을갖고 탈영중이고...

    인삼밭수색은 정말로 소름이기쳤다.... 선배안하사는 전역날이 얼마남지도않았고... 단기하사로.... 부족한 나를 항상 이끌어주던 선배였다..

    나는 어낙 졸병하사라... 월남전에 돌아온하사들과... 하사관들이 남아돌정도로 분대장들이 많았다..... 이런생활속에 최고 졸병하사의 심정을 누가 이해하리오???????

    16명에 고참하사들에,,,, 심리전으로,,, 졸병하사 나를대하는 하루일과?????????? 나는 난데 내가아닌 해병분대장생활이었다..........

    잘못해도 잘못...잘해도 잘못.... 코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 해병대에 양아치철학 전통론에 정통..... 한심한 말들... 참말로 말못할 기나긴 말단 졸병하사로 장장 3년을넘게...

    그리고 서서히 3년후부터 후배들이 올라오는데???????????..... 하는짓들이 너무나들 황당한 후배들이 많은...... 후배들이 하는짓들을 보면???????

    내가 똑똑하게 생활하면서 대우받으려면????????? 내가 살인까지해야될 해병대생활에,,,,,, 양아치같은 해병대 철학 전통론에.... 내가 폐가망신할 운명이라는것을 깨달았다...

    해병대생활은 내가 바보같은 사람이야.... 안전하게 바보로 전역해서 사회인이되겠구나를 생각했다.......많은 표적을 해병대안에 남겨두고.... 잊지못할 해병대생활에 있었던일들을,,,, 김포반도에 흔적을 잊지않게 표적을 남기고................ 나의 조국 고국을 여행하면... 항상. 김포지역과 강화지역에 나의 흔적을 찾아가서 표적을세운곳을 바라보면서...

    추억속에 해병묵시록을 눈물로 기억을 하면서..... 추억을 찾아서........... 이제 방년 내일모레면 70대인데,,, 한심한 70년대 김포.강화를 찾아서.... 운전하면서... 기억을해본다.

    귀향도 강화... 15중대.... 오늘도 추억을해보며.................... 주한미군 PX에 들어가서..... 해병대들... 쵸코렛사서... 마음을 달래줘야될. 여행길을 생각해본다.....

  2. 2018.02.16 12:29 신고

    나는 해병대생활 44개월마치고..... 미국으로 이민생활중에.... 미육군에 입대해서.... 자주포부대 통신병으로 근무하다....

    훈장받고 명예로운 전역 은퇴해서.... 미국 국가유공자로,,, 40여년간 연금받으면서.... 나이가 어느덧 은퇴에.... 안정된 생활속에. 한국여행하는 맛으로 살아간다....

    나의 발자취를 찾아서..... 두메산골 강화도 별립산 지역에,,, 버스타고다니던길을,,,,, 마이카 몰고 다니는 추억속에 기억은,,,, 참즐겁다.... 해병대생활때 다녀보지못한곳들도...

    마이카몰고 다니면서... 교동도도 왕복하면서.... 휘파람불면서 강화도 다니는길에... 전통시장 장터에가서 국밥에 막걸리 한잔하면서.......

    석모도.교동도,,,,그리고 도로공사도 다마쳤을,,, 하점면 고속도로 교동도길도..........

  3. 2018.02.16 12:34 신고

    짜빈동 전투.......... 나는 항상 이병.일병들 전사자들의 명복을 항상 빈다........... 해병대 졸병은 고달프던 과거 박정희시대....

  4. 1236기 김정훈부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8.08.14 07:17 신고

    해병대원들의 투지와 해병포병,미군포병들의 후방포 지원으로 이뤄진 짜빈동의 신화는 해병혼의
    자랑이다. 과거. 대구서 당시의해병 포병관측장교 김세창 중위님을 컨보이한적 있었다.